차에 치인 고라니, 척추-골반-다리 모두 부러져 수술 불가능…“이젠 고통 없는 세상으로…” 눈물의 안락사
《야생동물도 사고를 당한다. 나무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도로를 지나다 차에 치여 다리가 골절된다. 덫에 걸려 인대가 끊어진다. 8월 초 개소된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전남 구례군)는 ‘응급상황’에 빠진 야생동물들을 24시간 구조·치료하는 곳이다. 방사선 촬영기 등 각종 첨단 의료시설도 갖추고 있어 센터 개소 이후 멸종위기종 1급 수달, 2급 삵, 천연기념물 소쩍새,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 총 47마리를 치료했다. 이 센터 소속인 정동혁 수의팀장(33·사진)의 24시를 들여다봤다.》
○ 9월 16일-‘눈물을 참았던 순간’
센터로 이송해 X선 촬영을 하니 척추, 골반,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수술이 불가능해 안락사를 시키기로 했다. 약물을 혈관에 주입하기에 앞서 마취를 했다. 최대한 고통 없이 죽게 하기 위해서다.
○ 8월 5일-‘두려움을 극복했다’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정동혁 수의팀장이 8월 5일 올무에 걸린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 후 청진기로 건강상태를 진찰하고 있다.사진 제공 지리산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
옆쪽으로 돌아서 한 걸음씩 접근했다. 두려웠다. 15m까지 접근하는 데 20분이 걸렸다. 올무에 걸린 채로 멧돼지가 몇 m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했다. 마취 총을 꺼내들었다. 나무가 우거져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마취총(근육용)을 아무 데나 쏘면 안 된다. 대퇴부, 어깨 등 근육이 많은 부위에 정확히 맞혀야 한다. 부상을 당해 흥분한 상태에서는 마취총을 맞아도 안정된 상태에서처럼 흡수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 7월 21일-‘나를 엄마처럼 따르던 살쾡이’
야생동물은 어미를 잃거나 먹이가 부족해 탈진한 상태로 구조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석 달 전 한 시민이 지리산 인근 서시천에서 살쾡이 새끼를 데려왔다. 어미를 잃어 방황하다 탈진한 상태였다.
링거액을 공급해줘야 했다. 1개월 정도 된 살쾡이는 크기가 손바닥만 해 혈관을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몸 상태가 안 좋아 혈관이 수축된 상태. 근육 밑에 링거를 꽂았다. 이날부터 어린 살쾡이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숙직실에서 재우고 우유를 줬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먹이를 줬다. 치료 중인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참 어렵다. 방사를 고려해 자연 상태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은 병아리를 구하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구마 줄기, 칡넝쿨 등을 구해오기도 한다. 3개월이 지나 손바닥만 하던 살쾡이는 강아지만큼 커졌다. 방사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살쾡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사람들을 따르게 됐다. 방사를 해도 자연 적응이 안 돼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살쾡이를 서울대공원에 인계했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