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스트레스… 엄마들 “진로 빨리 결정”
학부모 사이에선 ‘과학고는 7세 때, 대학은 초등 4학년 때부터 진로를 결정해 준비를 시작해야 승산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는 실정이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의 진로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진로에 대한 과도한 강박관념 때문에 빚어진 부작용은 없을까? 초등생과 학부모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들어봤다.》
○ “손놓고 있다가 뒤처질까 두려워…” 박 군의 진짜 꿈은?
명확한 진로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기 위한 꿈과 진짜 하고 싶은 꿈이 따로 있는 사례도 발생한다. 일관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입시제도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학부모의 욕심의 희생양은 다름 아닌 학생이다.
박 군의 어머니는 “입학사정관제를 고려해서 아이가 한 가지 진로를 가지고 공부하도록 이끌고 있다”면서 “지금은 아이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뒤늦게 아이가 목표를 잡았을 때 일관성 있게 해놓은 것이 없으면 다른 학생에 비해 떨어져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사교육업계… 진로캠프, 적성검사, 컨설팅 성행
서둘러 아이의 진로를 찾아 준비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학부모도 많다. 최근 사교육 업계엔 진로 컨설팅, 진로적성평가, 진로적성캠프는 물론이고 사주로 보는 적성검사법까지 성행한다. 이들이 홍보마케팅 문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입학사정관제 대비용 진로 찾기’다.
초등 6학년 딸을 둔 학부모 김정희 씨(40·서울 강남구)는 최근 딸이 문과와 이과 중 어느 쪽에 적성이 맞는지, 어느 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지 알고 싶어 ‘학과·계열 검사’를 받도록 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아이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적성검사를 받았다면 이젠 진로에 근거해 포트폴리오나 독서기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를 받게 한다”면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간 입학사정관제에서 손해 볼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고 말했다. 지문으로 진로와 적성을 알아보는 업체에도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학부모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 이들 업체에선 특수 센서로 학생의 지문을 채취해 판독한 뒤 △선천적 적성 △인격·직업특성 △학습유형 등 결과를 20쪽 분량으로 분석해 학부모와 상담한다. 비용은 회당 10만 원 내외. 한국지문적성평가원 김용 대표는 “서울 강남지역 학부모는 초등 3, 4학년 때 외고, 과학고, 영재고 등 학교 진로와 이과, 문과 계열을 알아보기 위해 검사를 신청한다”면서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검사를 시키는 학부모도 많다”고 말했다. 진로 캠프도 크게 늘었다. 5박 6일 정도 진행되는 캠프의 비용은 60만∼70만 원, 일부 캠프 비용은 100만 원을 웃돈다.
어렵사리 진로를 찾아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일찌감치 진로에 맞춰 만든 포트폴리오가 진로가 바뀌자 외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학부모가 있다. 학부모 김모 씨(42·서울 양천구)의 아들은 특히 과학 쪽에 관심이 많았다. 진로캠프에도 다녀오고 적성검사도 수차례 봤다. 늘 이성적, 창의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교내, 교육청, 사설업체에서 실시하는 과학 관련 대회에 모조리 출전했다. 과학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학생부 장래희망 난에는 4학년 때부터 과학수사요원, 과학자라고 적었다. 최상위권의 성적과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지난해 국제중에 지원했지만 1차에서 탈락했다. 김 씨는 “과학 관련 수상실적, 활동 일색인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면서 평가에서 안 좋게 작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학생부에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 결과도 적혀 있었는데 100% 이과형인 아이를 보며 평가자가 ‘왜 우리 학교에 지원했나’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솔직히 다양한 활동을 밀어줄 형편이 안 되니 진로를 빨리 파악해 한 길로만 ‘올인(다걸기)’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실패를 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