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슬럼프 …출산 우울증 …‘니키아’가 일으켜줘
29일∼11월 5일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에서 유니버설발레단에서의 17년을 뒤로하고 고별무대를 갖는 발레리나 임혜경 씨. 그는 “그냥 발레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발레는 내게 신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임혜경 씨(39)가 29일∼11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라 바야데르’에서 고별무대를 가진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1994년 입단해 17년 세월을 보내온 그를 앞으로 유니버설발레단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올해 초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는 등 불혹의 나이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줬던 임 씨는 “이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고별무대를 갖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1999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초연 무대에서 니키아 역할을 맡은 임씨. 오랜 부상에서 벗어난 뒤 맡은 첫 역할이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임 씨는 스스로 “발레리나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어 봤다”고 했다. 발레단 입단 당시부터 이국적인 미모와 174cm의 큰 키, 뛰어난 표현력으로 주목받았고 군무부터 주역까지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심각한 부상도 여러 차례 겪었고, 발레리나에게 금기라고까지 말하는 임신과 출산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맡은 ‘라 바야데르’의 무희 니키아 역할은 더욱 특별하다. 임 씨가 힘들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발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1999년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초연에서 니키아를 연기하며 슬럼프를 털어버릴 수 있었죠. 2004년 아이를 출산한 뒤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해 우울증으로 괴로웠을 때도 복귀작이 ‘라 바야데르’였어요. 2001년 학생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 링컨센터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죠.”
2004년 ‘라 바야데르’ 무대에서 출산 5개월 만에 니키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낸 임 씨.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임 씨는 현재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원장을 맡으며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다. 올해 4월 ‘2010 현대춤작가 12인전’에는 자신이 안무한 작품 ‘For a while’을 올렸다. 9월에는 아카데미 학생 90여 명이 출연한 제14회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발레축제를 기획했다. 내년 1월에는 일본 미쓰코 마치모토 발레단 공연에서 주역도 맡을 예정이다. 이미 고별무대 이후를 차곡차곡 준비해온 셈이다.
“왜 아쉽고 안타깝지 않겠어요. 더는 유니버설발레단 연습 스케줄이 없을 거라는 생각만 하면….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해요. 좋은 모습으로,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그래야 앞으로 후배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떠나면서도 뒤에 남는 이들을 생각한다. 큰 눈을 또렷이 뜨며 “이제 시작이죠”라고 말하는 그의 등이 아름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