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 데이비드 버스 지음·정병선 옮김/408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그러나 실제로 임상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고민은 그와 같은 신화들과 거리가 먼 경우가 적잖다. 이 책에서처럼 ‘남편과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성관계를 원하는데 배우자는 거부한다’ ‘섹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혹은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 그냥 한다’ 같은 고민에서부터 최근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클럽에 가서 하룻밤 상대를 찾는다’ ‘남편은 싫지만, 섹스 파트너를 찾아 밖에서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냥 산다’ 등과 같이 과거와는 다르게 솔직하게 성욕을 표현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얼핏 보면 휴게소나 편의점에서 심심풀이로 읽을 법한 제목과는 다르게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는 각 개인의 내밀한 사연들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여성의 성과 관련된 심리와 행태에 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제공해 준다. 성을 무기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조종하고 싶어 하는 교묘한 속임수에서부터, 성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긍정적 체험 등등 여성이 성을 단순히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보지만은 않는다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여자는 왜 섹스를 할까. 이 책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 대신 실제 여성 1000여 명의 경험과 심리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답을 내놓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육체적 즐거움이나 성적 만족, 또 섹스를 통한 물질적 획득의 즐거움 등이 실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결과는 ‘여자들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섹스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시 한다’는 낭만적 신화가 시대착오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고귀한 로맨스를 과대 포장했던 과거의 기사도 정신이나 솔 메이트에 대한 환상도 여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압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혹 아니었을지. 어쨌든 섹스는 섹스일 뿐. 여성이건, 남성이건, 무엇이 그리 다르겠는가.
특히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이론이 아니라 호르몬과 뇌세포의 변화에 대한 의학적 증거를 담은 이론들을 일반인도 읽기 쉬운 어조로 풀어 놓은 점이 돋보인다. 섹스와 관련된 정신치료에 대해서 낯설어 하는 일반인에게 후반부의 ‘섹스 치료’ 장도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류학과 정신의학의 임상연구 방법을 이용해 사례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기술하다 보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머릿속에 들어오기보다는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또 개개의 사례를 더욱 심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부분도 지적할 만하다. 담으려던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쉽고 단순한 결론을 기대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덜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든다. 그러나 여성의 성에 대해 학문적으로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고급 독자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성은 일반화, 계량화, 통계화하기 힘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기에 의식에서는 표현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는 것이다. 지구의 45억 인류의 인생은 하나하나 다 특별하니까.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 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