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병합 항의 순국 매천 황현 선생 기념 학술대회 잇달아
“내가 꼭 죽어 의(義)를 지켜야 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국가가 선비를 키워온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이가 없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한가. 나는 위로 황천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을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좋은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 선생이 1910년 9월 10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자택에서 한일강제병합(1910년 8월 29일)을 통분해 아편을 삼켜 자결하며 절명시 4수와 함께 남긴 유서의 일부다. 그는 군주의 신하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식인(선비)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결함을 밝혔다.
석지 채용신이 그린 매천 황현의 초상화. 매천은 체구가 작고 병이 잦았지만 기상은 날래고 굳세어 가을매가 꼿꼿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매천에 대해 “문장과 기개가 사림 가운데 으뜸”이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 잠시 망설였던 ‘인간’이기도 했다. 망국의 선비로 살 수 없다며 아편을 삼킨 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우 황원에게 “내가 약을 삼키려다가 입에서 뗀 것이 세 번이구나”라고 말하며 인간적 고뇌를 털어놨다.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와 우리한문학회는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아트홀에서 ‘매천 황현 순국 100주년 기념학술회의’를 연다. 그의 문학 작품에 스며 있는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의강 원광대 교수는 미리 배포한 ‘매천 시의 저변에 흐르는 두 가지 의식’ 발표문에서 매천 심층의식에는 ‘구안(苟安·그런대로 편안하다)의 자긍 의식’과 ‘식자인(識字人)의 책임 의식’이 강했다고 밝혔다. 구안의 자긍심은 개인적 또는 사회적인 가치 기준 이상으로 살았을 때 갖게 되는 정서로, 매천의 시에는 자신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깨끗하게 도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긍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고 밝혔다. 매천은 자신이 강학하는 서재의 이름을 ‘구안실(苟安室)’로 정해 편액으로 내걸었다. 매천이 말하는 식자인이란 맹목적인 출세만을 지향하지 않고 가난한 생활도 싫어하지 않으며 양심을 지켜나가는 참된 지식인을 뜻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임형택 한국고전번역원 이사장의 ‘변역(變易)과 위망(危亡)의 시대에서 한 지식인의 형상’, 이희목 성균관대 교수의 ‘매천 황현의 산수시 소고’, 김진욱 순천대 교수의 ‘구안실신고(苟安室新稿) 연구’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2007년 설립된 기념사업회는 이날 매천의 시 중 번역되지 않았던 173수를 처음으로 번역한 책자를 배포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