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면 재미없는 세상도 있는데
쉰 중반에 접어든 선배의 하소연을 들으며 남의 일 같지 않다 싶던 나에게도 비슷한 증세가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날파리증’이라는 색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병이다. 말이 쉽지 눈만 뜨면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고역이다. 책 볼 때 무심코 이물질을 털어내려 손을 휘젓거나, 시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조금이라도 덜 성가신 독서방법을 찾으려 애를 쓴다. 한데 눈에 이어 귀까지 말썽이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다행히 가벼운 염증이란다. 의사선생님은 사람들이 괜히 귀 청소한다며 면봉 등으로 열심히 후벼대다 없던 병도 만든다며 제발 귀를 좀 내버려 두라고 한 소리 했다. 과도한 청결보다 귀에는 귀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진정 건강한 귀라는 조언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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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과 함께 심신의 기능이 점차 어눌해지는 것은 스트레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적당한 걱정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자양분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만큼 세상일에 덜 참견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자고. 이건 분명 나의 새로운 모습이지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노랫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심하고 방황할 때 순리에 맡겨 ‘냅두는’ 것도 때론 현명한 지혜라는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걱정이란 게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것인가. 흘러가는 대로 수굿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이만하면 됐다는 겸손한 만족과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힌 헛된 욕심을 구별하는 지혜는 아직도 저만치 멀리 있으니…. 순리와 억지의 시간을 오가며 몸으로 그 차이를 배우는 체득의 과정이 곧 평범한 우리네 삶이지 싶다.
순리대로 내버려 두며 살았으면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9월 중순까지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미리부터 알려준다. 몸의 변화도, 무더위도 겁내거나 싸워야 할 적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잠시나마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자각하는 연습을 해본다. 그래도 콧잔등에는 여전히 땀이 흐르고, 나는 언제쯤이면 인생이 불쑥 내미는 낯선 과제를 그때마다 평온한 낯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까, 궁금해한다. 과학의 진화는 마음도 새것으로 바꿔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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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의 ‘익숙지 않다’)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