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 26000은 기업이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을 집약하는 국제표준(글로벌 스탠더드)으로 8, 9월 99개 회원국의 투표를 통해 확정되면 11월 발표될 예정이다. 이 국제표준은 기업이 이윤을 내고 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개별 기업들이 하나하나 챙기려면 골치가 아프겠지만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한 운영관행, 소비자 이슈, 사회개발 등 7가지 영역에 36개의 세부과제가 제시된다.
ISO 26000은 ‘해야 한다(shall)’를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인 ISO 표준과는 달리 ‘하는 게 바람직하다(should)’만 제시한다. 이처럼 인증도 없고 강제력도 없지만 올해 말쯤 발효되면 영향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의 거래기업이 “당신 회사가 ISO 26000 준수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알고 싶다”는 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품질과 가격만 맞으면 되지 않느냐”고 응수했다가는 거래가 끊길지 모른다.
‘착한 기업’이라도 ‘나쁜 기업’과 거래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 의류회사 갭(GAP)은 평소 100명의 조사원이 세계 2700개 공장을 모니터링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2007년 인도의 하청업체가 10∼13세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사실이 드러나자 갭의 매출은 한 달 만에 25% 급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불의의 타격을 입는 기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국내 기업들은 각국 전문가와 부문 대표들이 5년 이상 매달려 ISO 26000 초안을 내놓을 때까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매출액 100대 기업 중 59%가 ‘대응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36%는 ‘어느 정도 대응’, 5%만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중소기업들은 더 무관심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사회적 책임 부문에서 우리 기업들은 유럽 국가보다 10년 이상 뒤져 있다’고 지적한다.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최근 강연에서 “국내 기업들은 ISO 26000을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우려하는 반면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무역찬스’로 보고 다각적으로 준비한다”고 대비했다. 해외시장에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될 수록 일본 기업의 입지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인도가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고 생각해 최근까지 반대한 만큼 우리가 준비를 잘 하면 경쟁력을 갖출 여지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ISO 26000에서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 비정부기구(NGO), 노동조합 등이 모두 사회적 책임의 주체다. 각 조직의 첫 번째 과제는 간헐적인 기부나 이벤트성 봉사활동이 아니라 세계의 이해 관계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착하게 살기’ 프로그램 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