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와 김연아의 페어플레이 전문가 본분 지켜 신뢰 회복해야
학생들이 수강과목에서 정해진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낙제점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뉴스가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당연한 원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많은 유명한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이들이 활발하게 외부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학업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도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졸업을 한다. 대학 측에서 보면 학교 홍보가 되니 좋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로서는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서로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정해진 원칙을 지키지 않고 눈앞의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편법을 쓰기 시작하면 권위를 잃고 더 나아가 사회의 신뢰성이 무너지게 된다. 물론 미국의 유명 대학들도 홍보를 위해 스포츠 스타를 입학시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대에는 테니스의 존 매켄로,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같은 유명 선수가 입학했고 지금은 미셸 위가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 스타 선수도 엄격한 학사관리를 따라야 하며 정해진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학점을 따지 못한다. 그렇기에 매켄로와 우즈도 대학 때 챔피언이 되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대학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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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신뢰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태나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최소한의 사실관계에서조차 전문가들의 의견을 믿지 못하는 국민이 상당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인터넷에 검증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가 떠돌아다니고 일반 사람들은 이 중에서 각자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는 것이 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국 사회에서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의 전문가 집단이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전문가들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이해관계, 심지어 소속기관의 입지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사실 자기 대학의 홍보를 위해 혹은 학장이나 총장의 압력에 의해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학생에게 편법으로 학점을 주는 교수라면,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외부의 눈치를 보며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겠는가.
교수만이 아니라 검사와 판사를 비롯한 법조인, 그리고 언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감도 팽배해 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검사들이 소신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보다 외부 권력이나 금력(金力)의 영향을 받는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기에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이 이처럼 폭발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류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인터넷의 발전 등 언론환경의 변화가 큰 이유이겠지만 이에 덧붙여 언론사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실이 굴절되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그 사회에 내재한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이처럼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바닥에 떨어진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각자의 본분과 원칙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교수는 학생 교육과 연구를 충실히 하고, 검사는 외부 압력과 관계없이 소신껏 판단하며, 언론인은 공명정대하게 사실을 보도하고 논평하는 본연의 임무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대학졸업장의 가치도 살고 검사의 권위도 회복되며 언론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김연아의 쌍권총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