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털모자, 중공군 유물 둔갑 기막혀”“6·25때 중공군으로 참전2005년 전쟁기념관 갔더니 중공군 유물 상당수 엉터리그 때부터 그릇-가방 모았지”
중국동포 이학봉 씨가 전쟁기념관에 기증한 중공군의 물품들. 위로부터 중공군의 기념메달, 모자와 신발, 밥그릇과 수저. 사진 제공 전쟁기념관
중국교포인 이학봉 씨(83)는 2006년 중공군이 6·25전쟁 때 사용했던 밥그릇과 숟가락, 배낭, 쌀자루, 운동화 등 군수품과 전쟁 후 중공군이 발행한 책자 등 20여 점을 모아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1944년 외가인 중국 옌볜(延邊)으로 이사했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중공군 50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는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중공군 사단장 부관 겸 통역관을 맡았다. 압록강을 건너 경기 수원까지 내려왔던 이 씨는 전쟁 후 부사단장을 지내는 등 중공군에서 33년간 복무했다.
○ 소박한 중공군 유품
전쟁 당시 사용했던 밥그릇과 숟가락, 비상식량을 담았던 식량자루, 각종 훈장과 상이군인 수첩 등을 통해 당시 6·25전쟁에 나선 중공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중공군의 기념메달에는 미국을 물리쳐 조선을 돕자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문구가 선명하다. 중국은 전쟁이 끝난 뒤 39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서규화 전쟁기념관 학예팀장은 “중공군이 6·25전쟁 당시 사용한 보급품은 통일돼 있지 않아 모두 이 씨의 기증품과 같은 물품을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기증 유물은 중공군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중 일부”라고 말했다.
○ 부족했던 중공군 보급품
각종 기록에 나타난 중공군의 보급 상황은 열악했다. 육군교육사령부의 ‘한국전의 기동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공군 병사는 통상 하루 치 식량을 휴대했고 대대와 연대에서 각각 이틀 치 추가식량을 보유했다. 중공군 전투식량인 초면(炒麵)은 미숫가루와 비슷했다. 미군 보병사단은 식량 등 하루 보급품이 600t인 데 비해 북한은 60t, 중공군은 50t에 불과했다.
중공군은 개인 탄약으로 자동소총 사수는 100∼200발, 중기관총은 1000발, 경기관총은 300발을 보유했다. 수류탄은 모든 병사가 4개씩 지녔다. 그동안 중공군은 통상 소대장만 총을 갖고 병사들은 방망이 수류탄만 가지고 전투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씨는 “중공군은 일본과 국민당 군대가 남긴 무기를 가져다가 1인당 1정씩 모두에게 총을 지급했다. 1952년부터는 화기가 소련제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