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기자는 말 그대로 글 쓰는 직업이란 것을. 시인이나 소설가는 구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동안 붓을 꺾으면 되지만 기자는 그렇지 않다. 일당백의 우리나라 기자는 더욱 그렇다. 쓰기 싫을 때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벙어리 냉가슴보다 더 큰 고통이다. 후배들 글만 보며 사는 요즘엔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고민이 있다. 단독 기사를 물어오는 후배는 안아주고 싶은 정도이지만 기획 잘하고 글 잘 쓰는 후배는 깨물어 주고 싶다.
현장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날이 많던 8년 전 이맘때다. 광화문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지를 뒤덮은 붉은 물결. 국민에겐 감동의 성지였지만 기자에게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시청역에서 회사까지 300m 남짓한 거리를 전진하는 데 1시간이 더 걸렸다. 퇴근길에는 대중교통을 잡을 수 없으니 다시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태극전사들이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 8강, 4강, 3∼4위전을 치렀으니 이런 날이 7일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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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맞아죽을 것 같아 감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 위험천만한 생각은 한국 경기의 편파 판정에 대한 의문이었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스포츠가 전문인 기자의 눈에는 홈 어드밴티지라고 하기에 저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았다. 당연히 상대국 언론에선 난리가 났다. 1년 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역대 월드컵 10대 논란에 한국 경기가 4개나 들어 있기도 했다. 올 초에도 미국의 ESPN과 블리처리포트 등에서 역대 월드컵의 어리석은 실수, 최대 논란 등을 보도하며 당시 한국 경기를 빼놓지 않고 등장시켰다. 그렇다면 그때 비판적 의견도 제시했어야 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의 월드컵을 더 보면서 기자의 위험천만한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기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첫 경기 토고전에서 선제골을 내주고도 이천수의 그림 같은 프리킥 동점골과 안정환의 중거리 역전골로 거둔 원정 첫 승의 극적인 드라마를. 조별리그 마지막 스위스전에선 이천수의 코너킥이 상대 수비의 팔에 맞아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심판의 오심으로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태극전사들은 세계 14위 그리스의 장신 수비수들이 지키는 ‘통곡의 벽’을 마치 제집 드나들 듯하며 한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렸다. 신체적 불리함을 딛고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선 태극전사들의 저토록 강함과 아름다움을 세 치 혀로 다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이제 어떤 의문도 품지 말고 태극전사들을 오로지 찬양할 때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