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싸움 그 와중에도…일흔에 캐낸 ‘희망 연꽃’
교장으로 은퇴한 뒤 60대 후반에 농장 경영주로 변신한 김성구 씨(오른쪽)가 충북 청원군 내수읍 은곡2리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부인과 함께 재배통에 심은 연꽃을 돌보고 있다. 김 씨는 “6월 중순이 지나면 연꽃이 활짝 피어 농장 전체가 환해진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김성구 씨
충북 청원군에서 연꽃농장을 운영하는 김성구 씨(72)는 교장까지 지낸 경력을 내세우지 않고 흙과 함께 후반기 인생을 살고 있다.》
“흙과 함께 인생 후반전 비닐하우스만 있어도 갈 곳과 일할 곳 생겨”
○ 생각지도 않은 연꽃과의 만남
한참을 지나 차 목사가 그에게 충북 청주시에서 연꽃 전시회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학교 후배인 청주동물원장으로부터 동물원에서 전시회를 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냈다. 차 목사는 즉각 지름 1m의 연꽃 재배통 500개를 보내왔고 이때부터 그는 연꽃과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2003년 무렵의 일이었다.
김 씨의 부인 송경자 씨(65)는 “고구마도 심어본 적이 없었는데 연꽃을 키우려니 고생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동물원 직원들이 도와준다고 재배통에 흙을 담고 그 위에 거름을 넣어주자 당연한 순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연잎이 녹는 모습을 보고서야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씨 부부는 “거름으로 쓰려고 소똥을 처음 만져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 일하겠다는 의지가 암도 물리쳐
젊은이 못지않게 일하던 그는 2004년 12월 두 차례 하혈을 했다. 병원 진찰 결과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있는 부위를 잘라낸 뒤 배변주머니를 달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통보였다. 그는 “교사시절 ‘삶의 질’을 강조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냐고 의사에게 물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마침 아는 사람의 귀띔으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에게 다시 진료를 받았다. 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박 원장은 “환부를 줄인 뒤 수술을 합시다”라고 말했다. 항암치료에 6주, 절제수술 이후 6개월, 복원수술 이후 6개월의 기약 없는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투병 중에도 어린이집 일과 연꽃 재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오전 4시에 일어나 연꽃을 돌본 뒤 어린이집에서 일했고 다시 밤늦게까지 연꽃을 관리했다”며 “청주에서 일산의 암센터까지 3시간 거리를 2번 빼고는 모두 직접 차를 몰고 가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암을 이기자 같은 병실에 있었던 환자 5명은 “김 선생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현재의 자리에 땅을 빌려 농장을 옮겼다. 600평 크기의 농장은 청주∼충주 국도 바로 옆에 있어 찾는 손님이 많다. 그동안 단골도 생겨 부부의 생활비는 거뜬하게 충당할 정도로 수입을 올린다. 그는 “100평짜리 비닐하우스만 있어도 누구라도 갈 곳과 일할 곳이 생긴다”며 “교장을 지낸 뒤 농장 사장을 할 줄은 몰랐지만 80세까지는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