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풍에 북풍까지… 맥못춘 금융시장
[외풍]
“스페인으로 위기 번지나”
유로화 체제 불안 커져
[북풍]
주가 한때 72P 수직낙하
연기금 매수로 충격 완화
[전망]
외국인 채권시장선 순매수
한국경제 신뢰도는 지속
○ 롤러코스터 외환시장
이날 서울 외환시장은 말 그대로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였다. 원-달러 환율은 스페인발(發) 재정위기 우려로 9.5원 오른 1124.0원으로 출발한 뒤 외국인 주식 매도세에 따라 고점을 1240원대까지 높여 나갔다. 돌발 악재는 오전 10시 40분에 터져 나왔다. ‘북한이 전군 전투태세 돌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시장에 퍼지면서 순식간에 달러화에 대한 ‘사자’ 주문이 쏟아졌다. 환율은 약 7분 동안 1240원대에서 1270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진정을 찾은 듯한 외환시장은 오후 들어 다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수입업체의 달러화 매수, 선물시장에서 개인들의 투기적 거래가 겹치면서 1277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화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전날보다 35.5원 오른 1250원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환율이 폭등한 것은 달러를 사려는 세력은 많은 반면 시장에 나온 달러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가 올해 들어 실질적으로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외환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변수는 외국인의 증시 자금 유출입이다. 국내 주식을 사면서 달러를 공급해야 할 외국인이 이달 들어서는 주식을 계속 팔고 이를 달러로 바꿔나가고 있다.
여기에 자산운용사들과 수출기업들이 환헤지 방법으로 이용하는 선물환 거래도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대부분 환율 하락을 예상하고 선물 거래를 해놓았지만 환율이 예상과 다르게 급등하면서 기존 계약을 손절매하기 위해 달러화를 사들이면서 환율이 더욱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 ‘스페인 뇌관’에 바짝 긴장한 증시
이날 코스피도 장이 열리자마자 1.22% 하락한 채 출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확대돼 2%대로 하락폭이 커지다가 오전 10시 40분 북한의 ‘전투태세 돌입’ 소문이 전해지면서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낮 12시 18분이 지나면서 지수는 무려 4% 넘게 빠졌지만 연기금이 3000억 원 가까운 대규모 매입에 나서면서 2.75%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개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코스닥시장의 타격은 더욱 컸다. 오후 1시 20분쯤 8.18%나 떨어졌다가 하락폭이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5.54% 하락한 채 끝났다. 그래도 지난해 1월15일 이후 최대 하락률이다.
스페인 전체 금융자산의 0.6%에 불과한 카하수르 저축은행의 국유화 소식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공포에 질린 건 “스페인의 위기가 이제 시작됐다”는 불안심리 때문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재정위기로 끝나지 않고 기업금융 부실 등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스페인의 이번 저축은행 국유화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간 부문의 부실을 정부가 메우는 과정에서 허약한 재정상태가 부각되면 스페인의 위기가 유럽 경제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분기와 3분기에 집중된 정부 채권 만기를 넘기면 남유럽 위기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며 “스페인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로화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