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곡에서 제목 딴 도르프만 희곡 ‘죽음과 소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연주하는 ‘앙상블 돌’. 이 작품은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쓴 동명의 희곡에 모티브가 됐으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시고니 위버의 진실’로 이어졌다.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11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책, 음악과 만나다’에서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설명하며 이 제목을 딴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녀’를 소개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칠레 작가인 도르프만은 1991년 희곡 ‘죽음과 소녀’를 썼다. 독재정권하의 고통과 용서, 화해를 그린 작품으로 고문 희생자인 여주인공 파올리나가 ‘소녀’, 그녀에게 고문을 가한 의사 로베르토가 ‘죽음’으로 대응된다.
이날 강연은 책(희곡)과 음악, 영화가 어우러진 자리였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도르프만의 희곡을 거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시고니 위버의 진실’로 이어졌기 때문에 세 가지 장르의 작품이 모두 동원됐다. 강연 초반에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앙상블 돌’이 ‘죽음과 소녀’를 실연해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장 씨는 “도르프만의 희곡에 있는 대사를 영화가 거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영화에는 희곡에는 없는 의사의 알리바이가 나온다.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다른 나라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다.
죄를 고백하면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결백을 주장하자 여주인공은 의사를 절벽으로 데려간다. 마지막 순간 의사는 “권력을 가진 그 순간들을 즐겼으며 그것이 끝나 아쉬웠다”는 놀라운 말을 내뱉는다. 그도 시대의 희생자였음을 여주인공은 이해하고 공존을 선택한다. 슈베르트의 음악만 들으면 경련을 일으키던 그녀는 그제야 슈베르트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장 씨는 “작가는 ‘죽음과 소녀’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비극, 즉 연민과 공포를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일을 실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죽음과 소녀’의 후기에 남긴 시대적 고통과 용서, 화해에 관해 던진 수많은 질문을 함께 소개했다. “어떻게 고문한 사람과 고문당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가. 미래에 과거가 되풀이될 위험을 방지하면서 어떻게 과거를 잊을 것인가.”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