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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집중분석]‘도쿄택시’타고 서울에 온 두 일본 남자

입력 | 2010-05-10 10:54:52


비행기공포증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록 밴드 리드보컬 '료'(야마다 마사시)는 택시기사 '야마다'의 도움으로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간다.


밤에는 아마추어 록 밴드의 리드 보컬, 본업은 라멘집 사장으로 일하는 야마자키 료(야마다 마사시)는 비행기 공포증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불쌍한 남자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라멘집 단골손님인 스튜어디스(유하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 료의 밴드에게 서울에서 공연할 꿈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다른 멤버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료는 결국 도쿄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때 남다른 오지랖의 택시 기사 야마다 카즈시(야마자키 하지메)가 나타난다. 택시 기사로 일한 20년 동안 '손님은 왕'이라는 신념 하에 손님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갔던 그는 료와 함께 서울 행에 오른다.

한일합작 코믹 영화 '도쿄택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의 김태식 감독이 일본인 한국인 배우를 데리고 보름 만에 후딱 찍은 저예산 영화다. 일본 뮤직 온 TV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서울 영상 위원회가 촬영을 지원했다.

료와 함께 '택시로 서울가기' 프로젝트에 합류한 택시기사 야마다는 한국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민방위 훈련을 접하고 놀란다.


▶"한국에서 전쟁 난 거야?" 놀란 두 일본인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만난 주연배우 야마다 마사시(31)와 야마자키 하지메(53)는 '택시 타고 서울 가기'라는 영화의 콘셉트를 듣고 "이런 영화에 출연 제안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택시를 타고 한국에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단지 항공편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비쌀 뿐이다. 택시는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에 상륙, 서울까지 간다. 택시를 타고 낯선 한국을 여행하면서 두 남자는 놀라는 일도 많다.

대표적으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민방위 훈련' 장면을 들 수 있다. "엥~!"하는 경보음과 함께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자 거리는 오가는 자동차 하나 없이 조용하다. 인근 군부대에서는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것이 모의 훈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일본 남자는 절망 속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어. 내가 혹시 죽거든…"이라고 흐느끼는 장면은 현실적이면서도 코믹하다. 후일담이지만 김태식 감독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워하는 경험이 바로 민방위 훈련이라는 통계를 보고 민방위 훈련 장면을 실감 나게 담기로 했다고 한다.

야마다 씨는 "민방위 훈련은 시나리오를 봐서 알긴 했지만,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야마자키 씨는 "민방위 훈련은 개인적으로 문화 충격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 제작진이 아침부터 매운 것을 잔뜩 먹는 것도 두 일본 배우의 눈에는 생소했다. 두 일본 배우는 매운 것을 먹기 싫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다 먹은 적도 있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달라졌다고. 2주가 지나자 매운 걸 안 먹으면 못 배길 지경이 됐다고 한다.

배우가 직접 '택시'를 몰며 촬영한 영화다 보니 '한국 운전자 아저씨들은 이렇다'라는 품평도 나왔다. 야마다 씨는 "사람들이 참 파워가 넘친다. 운전 습관이 놀라웠다"라고 말했고, 야마자키 씨는 맞장구를 치며 "속력을 줄이지 않고 끼어드는 실력이 놀라우면서 대단하게 느껴졌다. 서울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까"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한국 운전자들의 박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슬아슬 곡예 운전인 셈이다.

료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인 스튜어디스 역의 유하나.


▶한일 공통어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극 중 도쿄 택시기사로 나오는 야마자키 씨는 어딜 가나 한국인 택시기사와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초급 영어 문장이 일본인인 야마자키 씨의 입에서 나온 셈이다. 일본에서도 그런 구문을 달달 외우는지를 물었다.

야마자키 씨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영어교육을 하지만 드문드문 밖에 하지 않아서….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는 만국 공통 개그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물론 "Fine thank you, and you?" 이후에는 대화가 딱 끊긴다. 아마자키 씨가 "Your car ok?"라고 어설프게 묻자, 한국인 기사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땅만 쳐다본다.

극 중 밴드의 리드 보컬로 힘 있는 가창력을 선보인 일본 청년 야마다 씨는 실제로도 일본의 록 밴드 더 백혼(THE BACK HORN)의 리드보컬이다. 10년 동안 음악가로 활동한 그에게 '도쿄택시'는 첫 연기 데뷔작인 셈이다.

"영화와 음악 두 가지 예술을 경험해 봤는데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이 공통된 것 같습니다. 음악은 밴드를 하다 보면 수년 전에 만든 음악도 지금 그대로 공연할 수 있는데 연기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쨌거나 연기 경험이 앞으로 제 음악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러브레터' '춤추는 대수사선' 등 20여 편이 넘는 굵직한 영화에서 감초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한 베테랑 연기자 야마자키 씨는 한국 영화의 팬이기도 하다. 그는 마침 한국에 오기 전에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봤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박쥐'의 주연배우 송강호 씨도 좋아해 언젠가 함께 연기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료는 비행기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에 료가 환한 얼굴로 자신의 라멘집에서 단골손님 유하나를 맞는다.


▶"김태식 감독과 한 번 더 일하고 싶다"

야마자키 씨에게 한국인 감독과 일한 소감을 물었다. 김태식 감독의 험담이라도 늘어놓을까 해서 물은 것이다. 김 감독은 전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농밀한 연출력으로 30여 개국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화려한 데뷔식을 치른 '천재' 감독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촬영하는 중에도 이것저것 영화에 살을 붙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배우들, 특히 정해진 틀에 따라 움직이는 일본배우들은 애로 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감독님의 전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봤어요. 정보석 씨나 모든 출연진이 활력이 넘쳐 보였습니다. 김 감독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촬영장에선 감독의 주문이 그때그때 달라지니까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지고 재밌어서 마지막에는 '감독의 주문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경지에까지 올랐어요."

3일 영화 '도쿄택시' 홍보차 한국을 찾은 일본배우 야마자키 하지메(왼쪽)와 야마다 마사시.


▶ 국가와 언어를 초월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영화로…

'도쿄택시'는 가깝고도 먼 이웃, 한국과 일본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고자 만든 영화다. 영화를 찍은 두 배우도 한국을 전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됐을까.

"시사회 때 한국에 오면서 여권을 잊어버리고 공항에 왔어요. 여권을 가지고 오는 걸 잊을 정도로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야마다)

"도쿄에서 서울까지 차로 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운전을 하면서 직접 서울, 부산을 다녀봤기에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스케줄은 굉장히 빡빡했지만 힘든 걸 다 잊을 정도로 재밌었어요. 만약 다시 한번 김 감독과 작업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야마자키)

끝으로 두 배우에게 한일 문화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최근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일본에 많이 들어가고 한국 배우들도 일본에 자주 드나들지만 이에 비해 일본 문화는 소설 등 출판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 크게 교류가 없어 보인다.

"저는 사실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어요. 지난해 정의신(재일교포) 연극 연출가가 '야키니쿠 드래곤'이라는 희곡을 써서 아사히 예술 대상을 받았어요. 일본 내에서도 굉장히 권위 있는 상이죠. 큰 사건이에요. 이처럼 한일 공동 프로젝트가 자주 시도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 한일문화교류가 아닐까 합니다."(야마자키)

"한국에서 음반 CD를 내고 라이브 공연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영화로 인사드렸지만, 다음번에는 음악으로 한국 분들과 교류하고 싶어요."(야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 동영상 = ‘도쿄택시’ 타고 서울에 온 두 일본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