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통일한 후 왜 몰락했나
진시황은 강인한 의지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천하통일을 이뤘지만 대업을 성취한 후 자만심이 한껏 부풀어 올라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사진은 진시황릉으로 역대 제왕묘의 모범이 되었다. DBR 자료 사진
○ 천하통일, 콤플렉스의 결정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치열하게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 즉 콤플렉스는 장애가 아닌 적극적인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다. 부모와의 권력다툼 등으로 콤플렉스가 많았던 진시황 역시 그랬다. 그는 콤플렉스를 강인한 의지와 자기만의 독창적 방식으로 극복했고,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완수했다.
○ 리더십의 변질
39세의 나이에 대업을 성취한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통일 후 진시황이 취한 첫 조치는 자신에 대한 호칭과 최고 권력자와 관련한 용어 변경 및 재검토였다. 그는 자신을 신(神)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로 올려놓았다. 정상에 오르거나 큰 성취를 이룬 자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의 원천이 바로 자만심이다.
진시황 리더십 변질의 두 번째 징후는 과도한 토목공사를 통해 나타났다. 함양에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자신의 무덤 축조, 아방궁 수축, 만리장성 건설, 각종 도로공사 등을 쉴 새 없이 진행했다. 자신의 무덤인 여산묘와 아방궁 건설에는 무려 70만 명이 동원됐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진 것은 당연했다. 42세 때 자신이 탄 수레가 저격을 받은 후로는 더욱 폐쇄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오로지 시스템에 의해서만 제국을 통제하려는 강박관념이 커졌다.
급기야 그는 자기 없는 진제국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이른다. 통치 후반기 많은 시간을 내서 전국 순시에 몰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순시에 힘을 쏟느라 후계자 문제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훗날 조고(趙高)를 비롯한 야심가들에게 정변의 빌미를 제공했다. 곳곳에서 모순과 갈등이 터져 나왔고, 이 모든 것이 진시황을 압박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일하다 결국 쓰러졌다. 300만 km²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끌어안은 채.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4호(2010년 4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Special Report/스포츠 마케팅 전개 방법론-기업의 神話에 접목하라!
▼Special Report/지방자치단체의 스포츠 마케팅-‘빛 좋은 개살구’는 No!
지방자치단체의 스포츠 마케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 절차가 미흡하고 사후 활용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자체의 스포츠 마케팅은 종목의 인기보다는 관광 수입,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지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스포츠 마케팅은 순발력, 기획력, 추진력이 모두 필요하므로 민관 협력도 중요하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지역 주민의 체육 복지와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High-Tech Marketing Solution/고객 요구와 내부 개혁, 혁신의 두 배우
DBR은 하이테크마케팅그룹(HMG·회장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전문가들의 기고를 연재한다. HMG는 세계적인 연구 업적을 내고 있는 하이테크 마케팅 분야의 학자들과 업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경영 지식을 창출하고 교류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다. DBR 54호에서는 HMG가 제안하는 불황기의 혁신 추진 방법론을 소개한다. 혁신 투자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변화하는 고객 요구를 반영하는 ‘아웃사이드 인’ 혁신과 내부 핵심 역량을 활용하는 ‘인사이드 아웃’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