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진화론의 눈으로 본다면 남성과 여성은 모두 상대 성에게 선택받고자 경쟁하는 존재이며, 유독 여성만 경쟁에 내몰려 소외받는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괜찮은 논쟁거리가 되겠다 싶어 진화론의 관점에서 논문을 반박하는 발제를 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토론 참가자가 나를 비판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어떻게 남성 배우자를 선택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진화론은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인간의 문화와 사회제도의 역할을 간과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자연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남녀 간의 권력 갈등을 은폐해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말도 있었다. 진화론을 혼자서 방어하느라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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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비판을 거치면서 진화론 자체가 진화했다. 이제는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녀관계의 본질을 탐구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국내 페미니스트도 과학에 토대를 둔 논쟁을 펼칠 때가 됐다. 당장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실을 삼켜야 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보양식이 되리라 믿는다.
김성규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