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박근혜 “세종시 결론 다 내려놓고 무슨 토론”

입력 | 2010-01-21 03:00:00

“與 지도부 당론변경 논의 주장은 투표하자는 것” 쐐기
“黨, 선거때마다 원안 홍보” 朴, 올들어 4번째 날선 공세
정몽준 “대안논의는 與책무”… 민주적 절차통한 결정 강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신년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 당론 변경과 관련해서) 이미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토론한다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고 말한 뒤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재명 기자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 주류가 세종시 당론 수정을 위한 공론화에 나설 뜻을 밝히자 박근혜 전 대표가 20일 또다시 전면적인 반격에 나섰다. 세종시 수정 드라이브에 나선 친이 주류 진영을 겨냥한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강경 발언은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친이,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퇴로 없는 극한대치 상황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당내에선 “‘세종시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박근혜, “결론 내놓은 세종시 논의 토론 아냐”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경(在京) 대구·경북 시도민회 신년 행사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한나라당 친이 주류 진영의 세종시 당론 변경 움직임에 대해 “이미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토론한다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결론을 이미 내놓고 하는 것이며 수정안 당론을 결정하는 투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당론은 (세종시) 원안이라고 지도부가 몇 년간 선거 때마다 말하고 다녔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당론 변경을 논의하자는 주장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기 위한 사실상의 ‘요식행위’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마을회관까지 다니며 세종시 수정안 홍보를 하면서 총동원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무슨 토론이냐”고 말했다.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도 “진정으로 원안에 대한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수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토론은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정몽준 “수정안 논의는 집권당 책무”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부터 당론 변경을 위한 속도전에 나선 듯했다. 정몽준 대표는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기존 당론이 있고 정부 대안 발표 이후 새로운 대안을 만들자는 것도 사실인 만큼 이를 논의하는 게 집권 여당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에서 열린 서울 강남권 국정보고대회에서도 “당론은 가장 큰 공감대를 이룰 안을 함께 찾아가자는 것으로, 민주적 절차와 방식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당헌·당규 개정안 논의를 위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친이, 친박계는 당론변경 절차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현행 당헌·당규에서 당론을 변경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점이 쟁점이었다. 친이계 최고위원들은 “당론 변경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친박계는 “당론 변경 절차는 나중에 논의하자”고 맞섰다.

○ 여권 핵심부, 박근혜 벽에 무력감

박 전 대표가 이처럼 연이어 고강도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와대는 무력감을 호소할 따름이다. 박 전 대표와의 대화 창구조차 닫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주호영 특임장관에게 친박계를 담당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메신저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주 장관은 세종시 수정안 발표 전인 6일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의 사무실을 찾아가 내용을 미리 설명했지만 바로 다음 날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원안이 배제된 안에는 반대한다”며 직격탄을 날려 버렸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초 박 전 대표를 국회에서 직접 만날 때도 박 전 대표는 고개를 돌린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직접 박 전 대표를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누가 메신저로 나서더라도 역부족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전 대표가 배수진을 쳤기 때문에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朴텃밭 찾은 鄭총리 “블랙홀 걱정말라”

정 총리는 이날 박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을 찾아 낙동강 살리기 공사현장을 둘러봤다. 이어 김천 혁신도시 건설현장을 찾아 “세종시에는 더는 남은 땅이 없어 블랙홀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혁신도시에도 세종시와 마찬가지의 세제 및 재정 지원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역차별을 우려하는 지역 민심을 달랜 것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정 총리가 주례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할 때 주는 (정부) 보조금과 지원금의 경우 수도권에서 멀면 멀수록 더 많이 주는 ‘상박하후(上薄下厚)’ 개념으로 변경하라”고 지시했다고 조원동 총리실 사무차장이 전했다.

정 총리는 이날 경부선 KTX 상행선에서 충북 언론인 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뒤 귀경하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우연히 만났지만 3분 정도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았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