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군부 “언론계 30%는 저항세력” 해직 강요

입력 | 2010-01-08 03:00:00

“살려면 사표내라” 구타… 삼청교육대 보내기도해직언론인 4등급 나눠 감시취업도 제한 생계곤란 겪어




진실화해위원회는 1980년 해직된 언론인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직언론인 현황(800∼1000명)을 비롯해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최대 1636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시를 부정하고 반정부 활동을 했다거나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참여한 기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 중에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기자도 있었다.

해직 언론인들은 보안사의 감시하에 취업이 제한됐기 때문에 생계 곤란을 겪어야만 했으며 사회적 냉대 속에서 정신적 충격, 가정불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보안사는 특히 해직 언론인을 A, B, C, D등급으로 구분해 동향을 파악했다.

보안사 언론대책반 수집관 이건재 씨는 “반발 기자 등의 제재는 일단 구두 경고 또는 약점을 이야기하여 설득하거나 간부 선을 통해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해직했다”며 “1980년 봄 무렵부터 언론인에 대한 동향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주로 해직자는 제작 거부를 하거나 비협조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진술했다.

경남매일 해직기자 공봉식 씨는 “1980년 해직 후 1987년 경남신문에 복직될 때까지 취업 제한에 묶여 아무런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임신 4개월이던 아내는 충격으로 유산을 했다”고 말했다.

대구한국FM 해직기자인 김영택 씨의 부인 김송자 씨는 “남편이 보안부대에 다녀온 뒤 대인기피증과 공포증에 시달리면서 친구나 친척조차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며 “해직 후 간 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1998년 사망했다”고 말했다.

해직 언론인 중 상당수는 신군부의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기도 했다. 경남매일 해직기자 남부희 씨는 “보안대에 연행돼 10여 일 동안 조사받았는데 보안대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주먹으로 온몸을 구타당하고 양손을 밧줄에 묶인 채 매달리는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사표를 쓰지 않으면 살아서 여기를 나갈 수 없다는 위협을 받아 사표를 썼다”고 밝혔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전두환, 중요지령 직접 내려
국가의 언론장악은 헌법파괴”▼
■ 진실화해위 문답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국가 권력이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 1980년의 이 사건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김준곤 상임위원)

―권고사항을 보면 ‘피해 구제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말하는가.

“언론사들이 민사소송을 낸 바 있는데 시효 기산 문제 등 강압의 정도에 관한 논란 때문에 대법원에서 가서는 대부분 진 걸로 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피해와 강압도 상당 부분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적절한 조치의 방법에 대해서는 말하기 쉽지 않다.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판단해서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이영조 위원장)

―국가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에 대한 권고는 처음인데….

“사과 주체는 국가다. 국가의 하부기관이더라도 국가 기관이 하면 국가가 하는 사과가 된다. 과거에 우리 위원회에서 국가가 사과하라고 권고한 사례들에서 경찰청장이 사과한 경우도 있다.”(김준곤 상임위원)

―강제해직이 몇 명이나 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 같다. 해직자에 대한 ‘끼워 넣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이 밝혀진 바 있나.

“끼워 넣기를 했다는 주장은 명확히 조사하기 힘들었다. 국가보안사령부는 900여 명의 명단을 내려 보냈다고 하는데 1500여 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등 서로 말이 다르다. 1000명은 분명히 넘은 것 같다. 피해자로 특정하면 좀 더 조사해야 하는데 조사과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자료를 뒤져도 통계가 없다. 1000명이 넘는 기자 개개인을 확인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이명춘 조사3국장)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서명이 있는 문건이 있던데 그의 직접 지시로 이뤄졌다고 봐도 되나.

“중요 지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했다. 문제가 있는 서류는 반려했다는 진술도 있다.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전 사령관에게 보고가 되고 있었다는 점은 확인했다.”(이명춘)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