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콩으로 만든 내의… 화산재 등산복… 섬유의 진화 어디까지
식탁에서 맛보던 먹을거리가 옷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친환경 코드’가 상품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먹을거리 등 자연에서 추출해 낸 소재가 옷감으로도 쓰이게 된 것. 석유가 주원료인 기존 화학섬유와 달리 천연 소재는 땅에 묻으면 몇 개월 안에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하는 친환경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자연원료로 만든 섬유는 화석연료 사용량이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섬유보다 3분의 1 수준에 그쳐 ‘에코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천연재료를 활용한 섬유는 유아동복이나 내의처럼 피부에 직접 닿는 의류에 주로 쓰인다. 유아복 제조업체인 압소바는 최근 우유 섬유로 만든 신생아 내의를 선보였다. 우유 섬유는 신선한 우유에서 단백질과 아미노산 등을 뽑아내 만든 것으로 우유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다. 창문에 바르는 창호지 정도로 알고 있는 한지도 곰팡이 등 세균을 막아주고 냄새까지 없애주는 친환경 섬유 제품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유아복 브랜드 프리미에쥬르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로 옷을 만들어 선보였다. 남영비비안은 해조류를 가공한 섬유로 피부질환 완화 효과가 있는 내복을 내놓았다. 콩 단백질을 함유한 내의는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코오롱은 대나무, 콩, 코코넛 등 천연식물성 소재 외에도 무기질인 화산재가 함유된 스포츠의류도 만들고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화산재를 갈아 만든 원사로 옷을 만들면 차가운 느낌과 함께 포도상구균 살균기능까지 있어 등산 낚시 등 야외활동에 좋다”고 밝혔다.
녹색섬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첨단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섬유제품이 잇달아 시장에 나오고 있다. 중국산 저가(低價) 섬유제품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국내 섬유산업이 ‘첨단산업’으로 화려한 부활을 시도하는 것. 전문가들은 탄소섬유, 나노섬유, 슈퍼섬유, 친환경섬유 등을 아우르는 신섬유는 이미 ‘실(絲)’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기존 소재보다 가늘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훨씬 높아진 신섬유는 철강, 목재, 시멘트 등을 대신하는 첨단 소재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효성과 휴비스는 올해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 개발에 성공했다. 아라미드는 섭씨 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딜 수 있어 소방복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한국화이바는 올해 8월 전남 고흥에서 발사한 나로호의 페어링(fairing·발사체 상단의 위성을 보호하는 덮개)을 제작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