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경제경영]왜 사람들은 황당한 거짓말에 속는가

입력 | 2009-12-12 03:00:00


◇ 루머/ 캐스 선스타인 지음·이기동 옮김·윤평중 해제/192쪽·1만1000원·프리뷰

 저자는 미국 사례를 통해 루머의 실체를 밝힌다. 하지만 그 유포와 증폭의 과정에서 나오는 사례마다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 한두 가지가 떠오를 만큼 루머의 유포 과정과 위험은 비슷하다. 사진 제공 프리뷰

정보화와 대중민주주의에 힘입어 소문(루머·rumour)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루머는 진실인지 아닌지 입증되지 않는 주장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는 오늘날 루머의 위험에 대해 “정치인을 낙마시키고 연예인의 목숨을 빼앗으며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급기야 민주주의 기반까지 위협한다”고 진단한다.

○ 루머 주인공 비호감이 확산 동력

루머는 유포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루머를 퍼뜨린다. 2008년 많은 미국인들은 루머에 의해 세라 페일린 주지사가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대륙 명칭이 아니라 국가이름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루머는 전파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이 루머를 믿느냐 마느냐는 그 루머를 듣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가 결정적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상대에 대한 루머를 사람들은 더 잘 받아들인다. 또 특정 집단이 위험을 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루머는 더 잘 퍼진다. 분노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당화시켜 줄 루머를 더 쉽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라크 국민들은 ‘이라크 참전 미군 중에는 외국 국적자들이 많고 이들이 전사하면 참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 비밀 장소에 묻힌다’는 루머를 믿는다.

거짓 루머의 근본적인 위험성은 ‘교정의 어려움’에 있다. 루머가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되더라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힌 거짓 내용을 바로잡기는 힘들다. 특히 그런 믿음에 감정적으로 강력하게 이끌렸을 때는 더 그렇다. 2004년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자를 상대로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정부 공식 보고서를 보여주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더 강력하게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

사람들은 두려움과 희망 때문에 거짓 루머를 받아들인다. 저자는 이 근본 원인을 바탕으로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라는 경로로 서로 중첩되며 전파된다고 말한다.

폭포효과는 대부분의 사람이 특정 루머를 믿으면 그것을 따라 믿는 경향을 말한다. 프린스턴대 사회학자인 매튜 샐개닉 교수가 1만4341명을 참여시킨 뮤직마켓 실험이라는 것을 했다.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다운로드 곡목을 볼 수 있는 경우 앞선 사람의 선택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곡이 히트곡이 되기도 하고 실패작이 되기도 했는데, 순전히 다른 사람의 다운로드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집단 극단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전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2005년 여름 콜로라도에서 ‘미국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조약에 서명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진보집단과 보수집단의 토론이 열렸다. 단 15분간의 토론이 끝난 뒤 양 집단 모두 자체 동질성은 확연히 증가했고 내부의 다양성은 질식됐다.

의존적 생각-집단 극단화 탓
“적절한 규제-처벌이 예방책”


○ 규제의 ‘위축효과’가 안전장치

저자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의 주장이 활발히 교류하는 ‘생각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거짓 루머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실을 제시하는 방법으로도 루머를 교정할 수 없는 시장의 실패도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노력’이 대안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허위 사실을 유포했을 때 처벌한다면 진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 위축효과에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고 말한다. 사법부가 나서서 적절히 처벌함으로써 생각의 시장에서 위험한 거짓 루머들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의 해제를 쓴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예리한 지성을 과시하는 지식인들조차 ‘2008년 촛불’의 복합성을 해부하는 데 있어서는 왜 균형 잡힌 인식을 하지 못하며, 명명백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 왜 그리 인색한지의 이유를 이 책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평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