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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빛 찾은 18명 “아산테 사나” 연발

입력 | 2009-12-08 03:00:00

케냐 아동에 백내장 수술 지원나선 ‘월드쉐어’ 봉사활동 현장
저개발국 아동 1분에 1명꼴 실명
39%가 백내장 탓… 수술땐 치료 가능
인구 3800만 케냐에 안과의사 83명 뿐
월드쉐어, 의약품 4000만원어치 기증




“이제 엄마 아빠가 보여요”저개발국 아동구호단체 ‘월드쉐어’가 진행하는 ‘아프리카에 희망의 빛을’ 행사에 참여해 백내장을 앓는 케냐 아동들의 눈을 수술한 서울성모병원 주천기 교수(가운데 안경 쓴 이)가 개안식에서 아이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수술을 마친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방 “아산테 사나(고맙습니다)”를 외쳤다. 사진 제공 월드쉐어

“저는 에밀리 완자예요. 여덟 살 때 왼쪽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어요. 고향은 케냐 이시올로 시(市)예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쪽 언덕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매일 제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제 꿈은 변호사입니다.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고 반에서 1등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른쪽 눈마저 점점 흐려지고 칠판의 글자가 안 보이더니 2월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실명했다고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선생님이 말해줬지만 저는 다시 앞을 보고 싶습니다. 다시 석양을 바라보고 싶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고 싶어요.”

1일 아프리카 케냐 케리초 시 케리초지역병원에서 만난 완자 양(13)은 기자에게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완자 양은 전날 13시간 동안 덜거덕거리는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해발 5200m인 ‘케냐 산(山)’ 능선을 지나 케리초에 왔다. 어릴 때 다친 왼쪽 눈이 안 보이는 완자 양은 2월 백내장으로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었다.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버는 돈은 한 달에 30달러가 안 된다. 완자 양이 수술을 받으려면 교통비 등을 합쳐 최소한 100달러 이상이 든다. 6명의 아이를 먹여 살리기에 벅찬 부모는 완자 양의 수술을 포기한 상태였다.

저개발국가 아동구호단체 월드쉐어의 ‘아프리카에 희망의 빛을’ 지원자로 결정된 완자 양은 백내장 수술을 무료로 받기 위해 케리초에 왔다. 월드쉐어는 2007∼2008년 100여 명의 소말리아 아동에게 백내장 수술을 지원했다. 내전 격화로 소말리아 활동이 제한되자 올해부터 케냐 아동 지원을 시작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인 주천기 교수가 집도를 맡았다. 주 교수는 백내장 수술만 2만 건 이상 집도한 베테랑이다.

저개발국 실명예방 단체인 사이트세이버(Sightsaver)에 따르면 영양 부족과 비위생적인 환경, 부족한 물 등으로 세계적으로 매년 약 50만 명의 아이가 실명한다. 1분에 한 명꼴로 시력을 잃는 셈이다. 16세 이하 실명 아동은 1400만 명 정도로 98%가 저개발국에 산다. 아동 실명의 39%는 백내장 탓인데 대부분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다음 해에 수술비용의 1500%까지 환자의 경제적 생산력이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다.

시력을 잃을 처지에 놓인 케냐 아동들에게 ‘빛’을 선물한 서울성모병원 주천기 교수가 한 어린이의 눈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 월드쉐어

이날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그나마 행운아였다. 소말리아 난민인 이스탈린 후세인 모시 양(10)은 케리초 병원까지 왔지만 백내장에 변성이 생겨 수술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돼 수술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이 수술 받는 걸 무서워하자 “너희들이 두렵다는 그 수술을 진심으로 받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오전 11시경 시작된 18명의 수술은 오후 6시경 끝났다. 세상의 빛을 다시 찾게 된 아이들을 축복이라도 하는 듯 수술이 진행되던 날 케리초 전역에는 반가운 비가 내려 큰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케냐의 대지를 적셨다.

수술 다음 날인 2일 아이들이 안대를 풀었다. 시력을 회복한 아이들은 병실에서 시력 측정표를 보며 뛸 듯이 기뻐했다. 양 눈을 수술 받은 살레시오 말리 군(8)은 뛰어다니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말리 군은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쪽 눈을 수술 받은 마우린 체켐모이 양(18)도 “다시 일을 해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아산테 사나(고맙습니다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를 연발했다.

수술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완자 양만 안타깝게도 수술이 성공하지 못했다. 완자 양의 오른쪽 눈은 빛을 인식할 수 있게 됐지만 수정체 외에 망막에도 문제가 있어 색과 형태를 완전히 보는 데는 실패했다. 완자 양은 케리초 병원에서 추가 검진을 받기로 했다. 주 교수는 “고가의 장비로 추가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완자 양은 “포기하지 않고 꼭 시력을 되찾아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케냐시각장애인협회(KSB) 회장 줄리아나 키바수 씨는 “안약 나눠주기 등을 하고 있지만 케냐의 실명 아동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며 “케냐 인구는 3800만 명인데 안과의사는 83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안과의사가 3000명이다. 월드쉐어는 이날 시가 4000만 원 상당의 안과용 항생제 소염제 등을 케리초 병원 등에 기증했다.

케리초=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