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세습’ 정치 정비후경제권력 넘겨주기 포석
《북한 지도부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정한 2012년을 3년 앞두고 화폐개혁이라는 경제적 충격요법을 들고 나왔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복잡한 권력관계를 반영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경제권력 세습 위한 사전 정지작업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은 김 위원장이 3남 정은에게 ‘경제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조치로 주민들이 키워 온 시장경제는 된서리를 맞게 되겠지만 김 위원장이 노동당과 군대 등 권력기관을 통해 운영하는 이른바 ‘수령경제’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에 따라 북한 돈으로 운영되는 시장을 통해 돈을 번 주민들은 가구별로 헌 돈 10만∼15만 원이 넘는 재산을 모두 국가에 헌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보통의 북한 인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가구당 상한선을 넘는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꾸려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해 주고 뒷돈을 챙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 3대 세습 위한 사회주의 경제체제 정비
북한은 올해 4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를 열어 헌법을 개정하고 국방위원장과 국방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명문화했다.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의 독재 권력을 제도화하고 3남으로의 정치권력 이양에 대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이후 세습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한 경제 재건에 주력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은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 등 대중 노력 동원을 통해 실물 부문에 대한 경제재건에 나섰고 이번에 금융 부문인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2002년 7·1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을 통해 1990년대부터 진전된 시장메커니즘의 확산과 인플레이션을 인정하는 선에서 경제재건을 노렸다. 하지만 이번 화폐개혁에 따라 북한 경제체제는 이런 제한적인 개혁마저 부정하는 정반대 방향으로 선회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