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3학년 김혜영 씨의 시각장애 아동 방과후학습 돕기받아쓰기-띄어 읽기고개 푹 숙이던 경석이8개월만에 비밀 얘기까지서울시 ‘디딤돌 사업’ 성과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서울맹학교 6학년 이경석 군(오른쪽)과 고려대 보건과학대 임상병리학과 3학년 김혜영 씨가 국어 보충 과외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일반 문제집을, 시각장애 1급인 이 군은 점자로 찍힌 문제집을 각각 이용한다. 변영욱 기자
○점자단말기를 수업 교재로
“수업 시작 전에 받아쓰기부터 해볼까” “아, 어려운데….” 한글 받침 맞춤법을 어려워한다는 경석이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단말기 ‘한소네’를 켰다. 경석이에게는 노트북에 해당하는 수업 교재다. 키보드 누르듯 10여 개 버튼을 손으로 누르자 기계 가운데 작은 액정에 글씨가 입력됐다. 액정을 흘끗 보고는 김 씨가 “‘닳은’을 이렇게 써? ㄹ, ㅎ이 둘 다 받침으로 들어가야지”라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인 김 씨가 경석이를 가르치는 방법이다. 고려대 보건과학대 임상병리학과 3학년 학생인 김 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디딤돌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4월부터 경석이의 과외를 맡아오고 있다. 디딤돌 사업은 시민 누구나 각자 가진 능력 및 자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된 민간 연계 복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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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와 인생 수업을 한꺼번에
김 씨는 국어 전공자도, 특수 교육 경험자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요즘 경석이에게는 점점 뒤처지는 학교 수업을 도와주는 선생님이자, 첫번째 ‘인생 친구’다. 과외를 시작한 뒤 경석이는 성적뿐 아니라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만나는 비장애인 선생님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말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요즘은 엄마 몰래 오락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도움만 받다보니 응석을 잘 부리던 아이지만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호랑이 선생님 덕에 예의도 늘었다.
받아쓰기 검사를 마친 김 씨와 경석이는 각자 책을 폈다. 김 씨는 알록달록한 문제집, 경석이는 새하얀 점자책이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점자로 타이핑된 경석이의 책은 3배 이상 두껍다. 경석이가 점자를 손으로 더듬어 소리 내 읽자 김 씨가 잘못된 발음과 띄어 읽기를 교정해줬다. 점자를 전혀 모르는 김 씨도 과외 8개월째인 요즘은 감으로 경석이에게 읽을 위치를 짚어준다.
“시각장애는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국내에 전문 선생님이 부족해요. 평범한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하기까지 우려도 많았는데, 아이들 성적뿐 아니라 태도까지 좋아지는 걸 보니 성공인 것 같네요.”(서소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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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