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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愛人敬天’ 도전 40년

입력 | 2009-10-21 03:00:00

<38>존중의 힘

자녀 교육 제1원칙은 존중
존댓말 쓰며 책임감 갖도록 유도
잘못했을땐 엄하게 꾸짖어




장영신 회장의 어머니인 문금조 여사. 1961년 촬영했다. 장 회장은 자신의 인생철학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고 탄탄하게 회사를 이끌 때까지 버팀목이 돼준 분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지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색은 안했지만 곁에서 자신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하면 미안하다. 페스탈로치는 “자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사람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는 가장 큰 즐거움을 놓치고 산 셈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두렵기도 했다. 일에 빠져 사는 내 모습을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 행동을 애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에 늘 조심하고 긴장했다. 아이들은 유일한 보호자인 나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추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소소한 데는 도움을 못 주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모범 어머니, 모범 여성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면서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 애쓰며 열심히 산다는 점을 알아준 듯하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해준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줬다. 자식에게 못해준 것이 있으면 엄마는 보상심리를 갖는다. 이것 때문에 다른 면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점을 경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자식들을 대했다. 제1원칙은 존중이다. 아이들이 내 자식이긴 하지만 어엿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내가 어렸을 적, 집의 미닫이문에 새로 창호지 도배를 한 날이었다. 방 안에 있던 나는 밖에서 어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구멍을 뚫고 내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깜짝 놀라 “영신이가 새로 바른 창호지 문에 구멍을 뚫었다”고 야단이었다. 어머니는 “영신이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답답하고 밖을 내다보고 싶었으면 그랬겠느냐”며 나무라지 말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어머니 같았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이해해 주는 분이었다.

어머니의 존중과 자상함에 익숙해 있던 나는 학교에 들어가 선생님들의 거친 말과 욕설에 처음에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자식을 존대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참기 힘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뿐 아니라 손자 손녀에게도 늘 존댓말을 썼다. 성장기에 있는 자녀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질책을 100번 하기보다 더 낫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듯 나도 경영을 하면서 임직원에게 존댓말을 쓴다. 경영 일선에 처음 나섰을 때에는 실제로 나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임원이 많아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사실상 최고령자가 된 지금도 그렇게 한다. 존댓말을 쓰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까. 우리 아이들도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쓴다.

나는 회사 밖에서는 아이들과 부모자식 사이로 지내지만 회사에서는 철저한 직위관계로 대한다. 아들이라도 회사에서는 ‘채 부회장님’ 등으로 부른다. 지금은 참석하지 않지만 이사회나 회의석상에서 아들이나 사위를 만나면 다른 임원과 똑같이 잘했을 때 칭찬하고 잘못할 때 엄하게 문책했다. 겉에서 보기엔 엄하게 느껴지지만 내가 아이들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식이라고 감싸기만 한다면 진정한 존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주중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지만 주말이면 아이들과 마주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학업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들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했다. 만일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네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 더 고민했다. 이런 교육 철학은 경영 철학으로도 이어져 나는 임직원을 대할 때 명령하기보다는 방향을 유도하거나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썼다. “이렇게 하라”보다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느냐. 당신의 생각을 이렇게 보완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