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의 부속협정으로 체결된 문화협력의정서(Protocol on Cultural Cooperation)에는 답이 하나 제시돼 있다. 양측의 문화인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제작한 시청각물에 대해서는 양측이 지원 혜택을 부여하도록 약속하는 내용이다. 우리 영화와 애니메이션업계는 유럽인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부족한 자본과 기술을 조달할 수 있고, 유럽에서의 상영 유통 배급에 대해 EU로부터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투입 예산의 10∼80% 범위에서의 재정지원은 물론이고 보험 관련 비용까지 지원받는다. EU에서 자체 제작한 시청각물과 동등하게 취급되니 50%나 되는 방송쿼터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 양측의 문화예술 전문인은 번거로운 입국허가 없이 1년에 90일 범위에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정보교환, 방송교류, 공동예술훈련, 페스티벌 개최 협력의 권리와 혜택을 누린다. 문화재 보호와 출판 분야 교류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한류열풍이 중국과 동남아를 휩쓸었으나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중국의 경우 연간 외국 영화 수입 편수를 50편으로 제한해 할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진출하는 형편이다. 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FTA를 체결했으나 문화 부문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한-EU FTA는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여 한류의 유럽 진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다. 한-EU FTA의 결과 EU의 10% 자동차 수입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게 된 점은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다른 나라가 EU와 FTA를 맺으면 사라진다. 그 이전이라도 세계무역기구(WTO) 다자 관세감축 협상이 타결되면 혜택은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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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앞으로 국제적 문화주권주의의 상징인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EU 문화협력의정서에도 이 협약비준에 맞춰 협약상의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약속하고 있다. 이제부터 정부는 문화다양성협약과 FTA 문화협력의정서 간의 조화로운 해석과 적극적 이행을 위해 관련 국내법 제도를 정비하고 EU와 본격적인 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또 이번 의정서를 모델로 하여 중국을 비롯한 한류권 국가와 맺을 FTA에 문화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 통상 이익과 문화 혜택을 함께 증진하는 ‘문화 FTA’ 시대의 막이 올랐으니 기업인 노동자 농민이 문화예술인과 함께 문화적 삶이라는 종합예술을 펼쳐나갈 일만 남았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