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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가뭄… 홍수… 물을 다스리는 마법은 없나

입력 | 2009-09-19 03:03:00


◇ 물의 미래/에릭 오르세나 지음·양영란 옮김/436쪽·1만6500원·김영사

‘물과의 전쟁’ 전세계 유람
각국 치열한 실상 고발
“지역화로 물문제 해결을”

경제학 박사인 저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문화보좌관을 지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다는 사실에서 글 솜씨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초 국내에 출간된 ‘코튼 로드’는 그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보여준 책이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말리 등 6개국을 돌면서 목화 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세계화의 현주소를 짚었다. 이번에는 물을 소재로 세계를 유람했다. ‘물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을 돌아본 것이다.

첫 방문지는 지속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였다. 호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량(流量)이 변덕스럽다는 점이다. 호주 달링 강의 유량은 적은 해와 많은 해 사이에 4700배까지 차이 난다. 그래서 호주 정부는 물이 풍부할 때 최대한 저장해 두기 위해 댐을 많이 지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호주 사람들은 1인당 매일 260L의 물을 사용한다. 캐나다인, 미국인에 이어 세계 3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싱가포르는 적도 근처에 있어 비가 많이 내린다. 그런데도 물이 부족해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공급 받는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노력은 ‘강력한 정부’를 특징으로 하는 싱가포르답다. 정부는 좁은 국토에 여섯 개의 하수정화처리시설을 만들었다. ‘우정과 물 존중 사상으로 하나가 되자’는 가사의 노래도 보급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물이 다른 의미에서 골칫거리다. 잦은 홍수로 피해가 심각한 것이다. 작은 섬들이 홍수 때 없어지기도 한다. 한 현지인은 저자에게 기막힌 사연을 들려줬다. “1978년에서 1988년 사이에는 내 땅이 수면 위로 솟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후엔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더니 지금은 3분의 1만 남았어요.”

이렇게 홍수와 싸우면서도 물이 풍족하지 않다는 게 방글라데시의 고민이다. 특히 인도가 1980년대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지대 바로 앞에 파라카 댐을 건설한 뒤로 사정이 심각해졌다. 갠지스 강에서 가둬둔 물은 인도 농민들에게는 큰 혜택을 줬지만 방글라데시의 갠지스 강은 유속과 유량이 빈약해졌다.

5대양 6대주를 섭렵하는 2년간의 여정에서 저자는 물리학자, 곤충학자, 농부, 댐 건축가, 의사, 수몰지구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심각한 주제를 다뤘으면서도 기행문 형식을 가미해 쉽게 풀어 쓴 덕분에 읽기에 어렵지 않다.

저자가 소개하는 ‘가상수(virtual water)’ 개념도 흥미롭다. 가상수란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총량을 가리킨다. 가상수의 개념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저자는 모로코가 유럽에 토마토를 파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트럭 1대가 토마토 20t을 싣고 스페인으로 간다는 것은 100대의 트럭이 각각 20m³의 물을 싣고 간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20t의 토마토를 기르려면 2000m³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로코에서 물 부족 현상이 악화될 경우에도 토마토를 같은 수준으로 수출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정도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물 문제의 현상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물 문제에 관해선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