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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日 시골마을에 ‘현대미술의 꽃’이 피었습니다

입력 | 2009-07-28 02:50:00

에치고 쓰마리 트리엔날레에 선보인 다시마 세이조의 설치작업. 도카마치 시에 있는 폐교의 강당과 교실, 복도 등을 활용해 그림책의 내용을 환상적인 설치작업으로 형상화했다. 아래쪽은 니가타 시의 ‘물과 흙의 예술제’에 나온 엔도 도시카쓰의 ‘유출’. 버려진 정수장에 물이 흘러넘치는 작품으로 이 지역이 가진 물에 대한 애증을 표현했다. 도카마치·니가타=고미석 기자


빈집-폐교-정수장에 설치 작업
니가타현 2곳서 미술축제 한창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다보면 미니멀한 현대조각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늘어난 빈집과 폐교에는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오브제로 활용한 비디오와 설치작품이 놓여 있다.

주민이 7만5000여 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 주최로 3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축제의 현장이다. 일본 서북쪽에 자리한 니가타 현 도카마치 시와 쓰난 지역의 옛 지명을 따서 만든 ‘대지의 예술제-에치고 쓰마리 트리엔날레’. 올해로 4회를 맞는 국제미술제로 26일 개막해 9월 13일까지 계속된다. 이곳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 니가타. 인구 81만 명의 이 전원도시에서도 또 다른 현대미술제가 한창이다. 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시 외곽의 늪지나 버려진 정수장 등 도시의 구석구석을 활용해 71점의 작품을 선보인 ‘물과 흙의 예술제’다(12월 27일까지).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로 국내외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통해 지역 사람들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시도했다.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두 축제가 돋보이는 이유는 참여 작가와 관람객만의 잔치가 아니라, 지역 사람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행사에 무게중심을 두었기 때문.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파괴보다 보존이 중요하다는 점을, 밖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기억’을 채집해 마을과 도시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쓸모없이 여겨지는 것을 보물같이 소중한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예술의 연금술적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도카마치의 선택

760km²에 걸친 도카마치와 쓰난 지역에선 신작 220여 점을 포함해 총 350여 점의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중 공간의 특성을 오롯이 활용한 빈집과 폐교 프로젝트는 노인들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을 예술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폐교의 공간에 오감을 자극하는 설치작업 ‘최후의 교실’을 선보였다. 아이들의 노래와 웃음이 떠난 자리를 볏짚과 백열등, 거울, 선풍기 등으로 채우고 한 구석엔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던 일상용품을 쌓아놓은 작업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림책 작가인 다시마 세이조도 폐교를 무대로 자신의 작품 ‘학교는 비어있지 않다’의 내용을 환상적 설치작품으로 펼쳐냈다.

1994년 영국의 터너 상을 수상한 앤서니 곰리는 농촌의 빈 집을 긴 줄로 얼기설기 가로지른 설치작품을 통해 장소의 기억을 이끌어낸다. 또 쓰난 지역의 북동아시아 예술촌에서는 중국 작가 차이쿼창이 만든 드래건현대미술관과 함께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아니지만 나오시마 섬을 예술천국으로 변화시킨 후쿠다케 소이치로 일본 베네세 회장의 ‘후쿠다케 하우스’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국내외 상업화랑을 초청해 폐교의 교실을 고스란히 살린 전시장을 꾸몄다. 예술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평생 고된 노동과 함께했던 노인들이 기꺼이 예술가의 작업에 참여하거나 진행을 돕는 역할을 떠맡았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니가타 시의 도전

니가타 시가 자체 예산(4억7000만 엔)을 들여 추진한 예술제는 ‘세계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문화중심지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담겨 있다. 도시의 면적 중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악조건 속에서도 전국 쌀 생산량 1위를 차지한 니가타. 그들은 긴 세월 물 때문에 삶을 빼앗기고 물 덕분에 삶이 가능했던 애증관계를 주제로 삼았다.

전시작품의 키워드는 정체성, 소통, 전통, 생태 등으로 대략 압축됐다. 인간은 오래 살아야 100년, 하지만 흙이 1cm 쌓이기까지는 100년이 걸린다는 것을 상징한 토벽작업과 버려진 정수장을 활용한 설치작품 등 ‘물과 흙’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 니가타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다. 고택과 수몰지의 집 등 전통의 공간과 연꽃이 물결치는 늪 등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시민이 기부한 소장품과 접시 등으로 만든 다양한 설치작업도 눈길을 끌었다.

동굴벽화를 남긴 선사시대에 그랬듯, 두 축제는 삶과 예술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트리엔날레에서 만난 한 호주 작가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예술의 가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예술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도카마치·니가타=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공동체 회복 꿈꾸는 예술가-마을사람들 함께 작업”▼

두 축제의 디렉터 기타가와 프램씨

에치고 쓰마리 트리엔날레와 ‘물과 흙의 예술제’의 디렉터인 기타가와 프램 씨(63·사진)는 두 축제의 성공에 숨은 공로자다. 도쿄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고향인 니가타 시의 시립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시골과 전원도시에서 열리는 두 축제의 맥락은 다르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기본 개념에서는 똑같다”고 말했다.

“지구촌이 세계화, 획일화되면서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역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과 함께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흙을 통해 지구와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트리엔날레의 경우 4년간 준비작업을 거쳐 2000년에 처음 시작했다. 평생 미술을 접해본 적 없던 시골에서 현대미술을 받아들이게 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난 사람을 행복하게, 더욱 사람답게 만드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트리엔날레에 유명 작가들을 다수 초청했지만 한 번도 참여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부유하고 성공한 예술가라 해도 그들의 가족, 그들 자신도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본 시골마을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골마을의 트리엔날레는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예술가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완성한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