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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배진선]동물의 눈으로 동물원 보기

입력 | 2009-04-30 02:57:00


국내에 동물원이 생긴 지 올해로 100년이다. 1909년 한국 최초 동물원인 창경원이 문을 열면서 호랑이 사자 코끼리를 만나며 일상에 지친 시민이 자연으로 돌아와 삶의 여유를 되찾는 여가공간으로 변했다. 앞으로 50년 내에 지구상의 생물종 가운데 4분의 1이 멸종될지 모른다는 심각한 상황에서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종을 보전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이 커졌다. 야생동물의 생명존중과 복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다.

동물은 야생에서 먹이를 얻거나 쉼터를 찾고 짝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경쟁자와 싸워야 한다. 동물원에서의 생활은 야생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롭다. 그래서 동물은 남은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아무런 목적과 기능 없는 이상한 행동(정형행동)을 한다. 한정된 공간에 사는 동물은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육체적, 심리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며 불만을 나타낸다.

행동풍부화는 동물이 야생에서 보이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최대한 나타나도록 스스로 먹이를 찾게 하고, 나무 위에 사는 동물에게 높은 나무를 심어주고, 숨을 곳이 필요한 동물에게 은신처를 만드는 등 환경변화를 통해 동물이 야생에서처럼 무언가를 얻으려고 노력하게 만들어 스스로 건강을 가꾸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영장류학자였던 로버트 여키스가 1920년대에 실험동물에게 적용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1950년대 스위스동물원이 시범 실시했고 1990년대 들어서 다른 동물원으로 확대됐다. 서울대공원은 2003년부터 적용했다. 풍부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동물마다 필요로 하는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표범은 땅 위에 있는 것보다 나뭇가지에 몸을 걸치고 누워 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오랑우탄은 50m 높이의 밧줄 위가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사람의 눈으로 보지 말고 동물의 눈으로 봐야 한다. 일본원숭이에게 큼지막한 칡뿌리를 넣어주면 칡을 씹어 먹지만 나중에는 동료의 털 손질을 해주듯이 칡뿌리를 갈래갈래 손으로 헤친다. 곰에게 나무껍질이 붙어 있는 아름드리 고사목을 거친 상태 그대로 넣어주면 발톱이 계속 자라나 무엇인가를 긁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다. 거대한 인조 바위로 지은 다람쥐원숭이 집에 자연섬유로 된 마닐라 로프를 얽어 줬더니 전에는 다니지 못했던 곳에 길이 생겼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단순히 먹이를 주고 잠잘 곳을 제공한다고 동물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동물이 살아온 곳은 야생이다. 유전자에 들어 있는 야생의 본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해주는 동물원이야말로 동물에게 살맛나는 동물원이 아닐까. 동물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리라 생각한다.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