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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조세피난처

입력 | 2009-04-01 02:59:00


요즘 세계 각국에서는 ‘조세피난처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독일은 지난해 2월부터 리히텐슈타인의 LGT은행에 비밀계좌를 만든 자국인들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작년 여름 “스위스 UBS은행에 총 180억 달러(약 25조2000억 원)에 육박하는 미국인 자산이 숨겨져 있다”는 칼 레빈 민주당 상원의원의 폭로가 나온 뒤 UBS은행을 압박해 250여 명의 명단을 넘겨받은 데 이어 5만2000명의 명단을 추가로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4월 2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서도 조세피난처에 대한 감시와 투명성 강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세나 소득세에 대해 전혀 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대신 계좌 유지나 법인 설립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카리브 해의 바하마·버뮤다 제도·케이맨 제도, 유럽의 리히텐슈타인·스위스·모나코·안도라,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섬이 대표적이다. 조세피난처는 세금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 관리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돼 탈세와 ‘검은돈 세탁’의 온상으로 꼽힌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교란했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책임이 작지 않은 헤지펀드의 서류상 본사도 대부분 조세피난처에 있다.

▷이런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한국인들이 적발됐다. 케이맨 제도 등 조세피난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빼돌린 기업체 대표와 고액 자산가 45명이 국세청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들은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탈루(脫漏)소득을 외국인 명의로 조세피난처에 은닉 관리하는 등의 교묘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세피난처에 돈을 빼돌린 뒤 외국인이 투자하는 듯이 꾸며 한국에 다시 송금해 부동산을 사들인 사람도 있었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해지기 쉽다. 이런 때일수록 ‘가진 사람들’이 절제와 금도를 잊으면 계층 간 갈등과 사회적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법원도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자금 도피와 탈세에 대해 법적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악질적 경제범죄에 관대한 것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