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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미술품 643점 기증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

입력 | 2009-03-31 02:53:00


“기술적으로 벌어, 예술적으로 써야”

《첫날은 실패했다.

부산에서 화랑을 연 지 23년.

몸도 아프니, 죽기 전에 고향에 이바지하자는 마음으로 50여 점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밤새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날이 밝으니 슬그머니 생각이 달라졌다.

정도 들고, 보험 든 것도 없는데 늙으면 하나씩 팔아 써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시 밤이 왔다.

이번엔 변심 못하도록 기증 목록을 작성해 한밤중에 팩스로 보내버렸다.

이튿날 아침 미술관 직원이 놀라 전화를 걸어왔다.

“와 그라요? 화랑 안 할라요?”

부산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62)는 1998년의 첫 기증을 떠올리며 “인간인데 (기증 앞두면) 다 흔들린다”고 덤덤히 말했다. 옥션에서 기증작을 따로 사들이는 등 10년간 313점이 그의 손을 거쳐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또 경남도립미술관에

200점, 밀양박물관에 100점, 부산박물관에 30점을 기증했다. 》

부산시는 그의 공을 기려 2월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영학 씨가 만든 신 대표의 두상을 설치하고 7월 12일까지 ‘신옥진 컬렉션’전을 열고 있다. 가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박수근 장욱진 박고석 이우환 등을 비롯해 위트릴로, 블라맹크, 르누아르, 피카소, 샤갈 등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국내외 작품이 즐비하다. 특히 레오나르도 후지타, 우메하라 류사부로, 무나가타 시코 등 일본 근대미술의 컬렉션이 빛을 발한다.

지역의 현역 화상이 공동체를 위해 소통의 새 장을 열고 있다. 기증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환경에서 ‘기증의 달인’이 탄생한 과정이 궁금했다. 마침 서울에 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메멘토 모리-삶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

“서울의 신문사에서 일한 3년만 빼고 줄곧 부산에서 지냈다. 서울서 과로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을 때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자고 결심했다. 고향에 내려와 그림을 배우다가 1975년 화랑을 열었다. 동양화가 대세였지만 과감히 서양화 전문화랑을 표방했다.

그때 문화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부산에 5개 화랑이 있었다. 모두 문 닫고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공간화랑도 상처투성이로 긴 완주를 한 느낌이다. 1989년부터 부산청년미술상을 만든 것, 개관 30주년 기념 자료집을 만든 것이 보람이다.

몸이 많이 아팠던 것이 기증의 계기가 됐다. 돈 욕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가장 거짓말 같은 사실은 죽음이다. 젊어서 죽을 고비를 넘겨서인지 빨리 정답을 찾는 길을 터득했다. ‘난 반드시 죽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온다.

솔직히 (기증)해보니까 좋다는 말은 너무 성급하다. 우리나라는 기증 받는 측이나 주는 쪽이나 서툴다. 나는 프로니까 상관없다. 대접받자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기증과 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상호작용을 한다. 기증한 기관에 주차 코너를 만들거나 무료 입장권을 주는 등 정신적 예우도 필요하다. 주는 쪽은 재산을 주는 것이니, 받는 쪽은 명예로 돌려줘야 한다.”

○ 혼자가 아닌 우리

“그게 다 현금인데 왜 한창 나이에 기증하느냐고 묻더라. 죽은 다음 기증하는 것은 옛날 얘기다. 가족들 재산 다툼도 생길 수 있고. 어느 작품이 어디로 갈지도 잘 정해야 작품이 제 역할을 하고 빛난다.

기증을 시작한 뒤엔 안 하면 섭섭하더라. 정신병에 걸렸나 보다.(웃음) 200여 점을 기증하니 허남식 시장이 기념상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무슨 열사도 아니고 민망해서 사양했지만. 그 마음에 감동받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작품까지 기증했다.

돈은 기술적으로 벌고, 쓸 때 예술적으로 쓰라는 것이 내 좌우명이다. 아들 하나 있는데 어릴 때부터 대학까지만 책임진다고 말했다. 돈도 없지만 만약 있어도 너랑 상관없다고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30여 년 견딘 자체가 내 생각에도 가상하다. 하지만 돌아보니 혼자서 ‘마음의 끈’ 하나를 붙들고 외로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 걸어왔다는 자각을 3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고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