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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대해부③] 열아홉 김연아 연대기

입력 | 2009-03-24 07:27:00


아버지의 긴 팔과 다리를 물려받은 소녀는 마냥 얼음이 좋았다. 발레도 해봤고 바이올린도 켜봤지만 얼음 위를 누빌 때만큼 희열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14년이 흐른 지금, 그 소녀는 대한민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의 동의어가 됐다. 김연아(19·고려대). 제대로 된 링크 하나 없었던 한국에서 그녀는 어떻게 ‘피겨퀸’으로 성장했을까. 어머니 박미희씨의 저서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폴라북스)와 주변의 증언을 참고해 김연아의 피겨인생을 돌아봤다.

○1996-1999 = 여섯 살 여름. 집 근처 과천시민회관에 실내링크가 생겼다. 함께 방학특강반에 등록했던 언니는 몇 달 후 “재미없다”며 그만뒀지만 동생은 혼자서라도 계속 타고 싶어 했다. 집에 가면 만화영화 대신 피겨 선수들의 비디오를 볼 만큼 좋아했다.

그러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선수가 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 어머니는 “연아처럼 재능있는 아이는 처음 본다”는 말에 넘어갔다.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다. 4만9000원이었던 수강료가 35만원이 되고, 9만원짜리 스케이트가 100만원짜리로 바뀐 게.

○2000-2001 = 초등학교 4학년생 김연아는 처음으로 엄마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수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첫 전지훈련이었다. 당시 지도자였던 신혜숙 코치는 “연아는 다른 학생들이 자유시간을 즐길 때 혼자 내일 연습에 쓸 장갑을 빨아놓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임했으니 이후 실력이 부쩍 늘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김연아는 승부욕이 강했다. 어릴 때부터 지는 건 못 참았다. 뭘 하든 죽기 살기로 했다. 박 씨는 자신의 책에 “연아는 남들이 한 번할 때 두 번을 연습했다. 1년 동안 2년치를 연습한 셈”이라고 썼다.

○2002-2005 = 트리플 점프 5개(플립, 루프, 토루프, 살코, 러츠)를 모두 마스터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작부터 달랐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 IB스포츠 구동회 부사장은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연아가 2회전 반에 성공한 후 코치가 ‘이번엔 세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그런데 연아가 ‘이렇게요?’ 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세 바퀴를 돌아 보였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시도 만에.” 지금 ‘점프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비결도 그 때 ‘기본’을 철저히 지킨 덕분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IMF의 직격탄을 맞아 은퇴 위기에도 처했지만, 2002년 첫 국제대회였던 트리글라브 트로피 우승이 ‘세계’라는 새 목표를 심어줬다. 이후 중학생 김연아는 본격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2008 = 2006년 5월. 김연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연아는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단숨에 김연아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유는 스케이트였다.

4개월을 신어야 하는 스케이트화가 일주일만 신으면 자꾸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여러 켤레를 신어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고통. 하지만 연맹은 김연아 가족을 수차례 설득했다.

그 때 김연아가 어렵게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랑프리 파이널 이후 스케이트화를 무료 제공하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김연아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일도 생겼다.

안무가 데이빗 윌슨을 만나러 간 캐나다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김연아를 ‘토털 패키지(Total Package)’라 부르며 감탄하던 오서 코치는 결국 김연아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생애 첫 제자를 맞이했다. 오서 코치와 호흡이 척척 맞는 김연아는 이미 “은퇴할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고 선언한 상태.

○2009-현재 = 그렇게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희망 아이콘’이 됐다. 피겨계의 열악한 현실과 홀로 싸웠던 어린 소녀가 이제 전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피겨퀸’으로 자란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올림픽 놀이’를 하며 놀았다는 김연아의 지상 과제는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

하지만 피겨 선수로서의 마지막 목표는 단지 ‘금메달’에 그치지 않는다. 김연아는 “‘무슨 대회 몇 회 우승’이 아니라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기억에 남는’ 같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김연아가 땀을 흘리는 진짜 이유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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