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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3년 독학사 첫 합격자 배출

입력 | 2009-01-08 02:58:00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는 한(恨)이다.

한국인이 품고 있는 많은 한 중에는 배우지 못한 한도 있다.

못 배운 것이 한까지 변한 데에는 한국 사회만의 특성이 크다. ‘졸업장’으로 대변되는 학벌을 유난히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것이다.

한국인에게 ‘간판’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어감이 강한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다.

1990년 마침내 정부가 이 한을 풀어주겠다고 나섰다.

대학을 다니지 않고서도 혼자 대학과정을 공부해 4단계의 독학시험을 통과하면 정규 대학 졸업자와 같은 학사 학위를 주는 ‘독학사’ 제도를 내놓았다.

한마디로 경제적 여건 등 여러 사유로 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학졸업장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 독학사 배출을 앞두고 1992년 12월 치러진 최종 시험인 학위취득종합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만 3972명이었다. 특히 간호학과에는 3218명이 응시했다.

그러나 1993년 1월 8일 발표된 제1회 독학사 합격자는 4단계 시험 응시자의 3.7%인 147명에 불과했다. 간호학과 응시자는 단 3명만이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당시 합격자 중에는 경북 울릉도에서 농사를 짓는 61세의 이훈우 씨가 최고령으로 합격하는 등 40대 이상 독학사가 대거 포함돼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살렸다.

이후 매년 초 한 차례씩 배출되는 독학사는 합격자 발표 때마다 의지의 합격자들로 화제가 돼 왔다.

2007년에는 패션일러스트계 거장인 김상(본명 김경상) 씨가 64세의 나이로 최고령 합격자가 됐다.

김 씨는 20여 년간 중앙대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디자이너를 위한 패션 스케치’ 등의 저서도 있지만 학위는 없었다.

당시 김 씨는 “19세 때 초등학교 교사가 됐지만 패션에 대한 동경 때문에 곧 사표를 냈다”며 “무작정 패션계에 뛰어들어 전문가가 됐지만 학력의 벽이 두껍다는 것을 절감하고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78명의 독학사가 배출돼 독학사 학위 취득자는 1만685명이 됐다. 올해도 다음 달에 1000명에 가까운 독학사가 배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2년 전 신정아 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에서 시작돼 전 사회로 퍼져나간 일련의 학력위조 파문에서 볼 수 있듯이 학벌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갈 길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