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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LPGA 입성한 예일대 졸업생 이지혜

입력 | 2008-12-12 03:01:00

안정된 직장까지 버리고 미국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을 삼수 끝에 통과한 이지혜가 애완견을 껴안고 포즈를 취했다. 이지혜는 “멋진 골프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제공 이지혜

미국 예일대 골프부에서 활동하던 때의 이지혜(가운데).


“예일大 입학때보다 Q스쿨 통과 더 기뻐요”

‘명문 대학 졸업장과 안정된 직장….’

누구나 부러워할 만했지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 기쁨은 마치 온 세상을 얻은 듯했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에서 3수 끝에 합격한 이지혜(25).

그는 지옥의 레이스라는 Q스쿨에서 5라운드 합계 8언더파 352타로 공동 12위를 차지해 상위 20명에게 주어진 내년 시즌 LPGA투어 카드를 받았다.

“제가 붙을 거라고는 아마 저 말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날아갈 것 같아요.”

미국 올랜도의 아파트에서 국제전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내년 LPGA투어 전 경기 출전권을 따낸 이지혜는 골퍼로서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그야말로 무명선수다.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가 실려 있는 각종 검색사이트에 ‘가수 이지혜’는 있어도 ‘골퍼 이지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는 서울 구정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나 ‘고교의 하버드’라는 명문 사립 필립스아카데미를 거쳐 아이비리그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교 대학 동문이며 중국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해 중국, 홍콩에서 연수했다.

골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취미로 시작해 그저 운동 삼아 했을 뿐이었다. 예일대도 시험보고 일반 학생으로 들어가 잠시 골프부에서 활동한 적은 있다.

그런 그가 2006년 5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뉴욕 지점과 호주의 맥쿼리은행 홍콩 지점 입사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둘 중에서 고민하다 홍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는 졸업까지 몇 달 여유가 생겨 다시 골프 클럽을 잡았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될 줄이야.

“골프가 참 재미있어서 ‘아예 프로골퍼가 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위에서는 다들 만류했어요. 얌전히 직장 다니다 시집가라고 하더군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는 어머니 나정희(51) 씨는 “대학 졸업식에 갔다가 처음 골프 얘기를 듣고 황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어 프로골퍼의 길에 접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7년 LPGA 퓨처스투어(2부 투어) 9개 대회에서 7번이나 예선 탈락하며 상금 1188달러(162위)에 그쳤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7시간 동안 운전을 한 적도 있었다. 어린 후배들이 “저 언니 왜 저러냐” “왜 사서 고생하냐”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는 얼굴이 후끈거렸다.

“관둘까 하며 여러 번 망설였어요. 하지만 삶이 반드시 평탄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공하기 직전에 포기하면 끝내 성공을 못하는 것이라 여기고 이를 악물었어요.”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는 더욱 땀을 흘렸다.

지난겨울 충남 천안 데이비드 리드베터 골프 아카데미(DLGA)에서 김하늘, 최나연 등 국내 프로들과 석 달가량 동계훈련을 하며 샷을 가다듬었다. 이번 Q스쿨을 앞두고는 넉 달 동안 하루 8, 9시간이나 공을 쳤다. 174cm의 큰 키에 드라이버샷이 평균 250야드 정도인 그는 올해 들어 쇼트게임의 정확성이 높아졌다.

Q스쿨 합격 후 그는 이번 주 신지애, 미셸 위 등 유명 스타들과 LPGA 신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비로소 선망의 대상인 투어 프로가 된 자신을 실감하고 있다.

“예일대에 입학했을 때보다 더 열렬한 축하를 받았어요. LPGA 프로 되기가 훨씬 어려운 관문이라 그런가 봐요.”

명문 대학이 많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투어 프로 진출은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어서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예일대 홈페이지에도 그의 합격 소식을 담은 글이 올랐다.

이지혜의 LPGA투어 진출은 어린 나이부터 운동에만 매달리며 공부는 멀리하는 한국 학원 스포츠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2부 투어에서 후배 한국 선수 한 명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는데 ‘이제 뭘 해야 하나’라며 국내 학원 스포츠 시스템을 원망하더군요. 어릴 때는 운동, 공부, 여행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해요, 한국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DLGA에서 이지혜를 지도한 로빈 사임스(아일랜드) 코치는 “이지혜는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LPGA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것도 2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성취했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칭찬했다.

이지혜의 언니 이지원(27) 씨도 미국의 명문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과 피아노를 복수 전공한 뒤 줄리아드음악원 석사 과정을 거쳐 라이스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어머니 나 씨는 “만약 어릴 때부터 억지로 예체능을 시켰다면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늦깎이 신인’ 이지혜는 13일 귀국해 가족과 함께 보낼 계획이다. 우선 미국에서 좀처럼 먹을 수 없었던 떡볶이와 팥빙수 등을 실컷 먹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단다. 이지혜에게는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연말이 될 것 같다.

:이지혜는:

△생년월일: 1983년 6월 1일 △고향: 서울 △가족 관계: 아버지 이성재(61·SPG산업 대표이사) 씨와 어머니 나정희(51) 씨의 3남매 중 둘째. △최종 학력: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졸업 △프로 전향: 2006년 △키: 174cm △혈액형: A형 △골프 시작: 서울 구정초등학교 2학년 때 △통산 상금: 6870달러 △최고 성적: 공동 11위(LPGA 2부 퓨처스투어 아메리칸 시스템스 인비테이셔널) △베스트 스코어: 68타(2008년 Q스쿨 1라운드) △좋아하는 음식: 떡볶이, 닭볶음탕 △취미: 독서, 여행 △최근 읽은 책: 소설 롤리타 △좋아하는 골퍼: 타이거 우즈 △사용 클럽: 드라이버 캘러웨이 FT5(로프트 9.5도), 아이언 미즈노 MP57, 퍼터 예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