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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공직자윤리법 제정 선언

입력 | 2008-11-20 02:47:00


‘채찍과 당근.’

4급(서기관) 이상 공무원들은 매년 1월에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도 포함된다. 공직을 이용해 부정축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차관 및 국회의원도 재산 공개 대상이다. 새해가 되면 공직사회는 재산 등록을 하느라 부산하다.

고위 공무원들의 재산을 이처럼 공개하게 된 것은 5공화국인 1980년 11월 전두환 대통령 때였다. ‘정의사회 구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온 전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5000여 명의 공무원을 잘랐다. ‘사회정화’ 차원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정했다.

전두환 정부는 공직기강을 다잡기 위해 1980년 11월 20일 공직자윤리법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발표를 보면 1981년 7월부터 장관급 이상 대통령까지 재산을 공개하고 1982년부터는 2급 이상 모든 공무원이 재산을 등록하도록 했다. 공무원 숙정작업에 이어 공무원들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각종 인허가권이라는 칼자루를 쥔 공무원들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고 반대급부로 검은돈을 받는 부패의 고리를 끊겠다는 생각이었다.

1차 공개 대상은 장관급 이상 공직자로 여기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 350명이 해당됐다. 2차 공개 대상은 2급(이사관) 이상 고위 공무원 3500여 명으로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재산 등록도 같이 하도록 했다.

여기에다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에게서 받은 선물을 신고하도록 했다. 비위에 연루된 퇴직 공무원의 취업을 제한하고 고위 공직자의 경우 관련 사기업 취업을 금지토록 하는 아이디어도 이때 나왔다.

공무원들이 재산을 숨길 것을 우려해 최초 등록 때는 취득 경위를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또 등록된 재산은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재산을 숨기거나 불성실하게 신고할 경우 탄핵 파면 형사처벌은 물론 명단도 공개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재산을 은닉하는 데 관련된 사람도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직자윤리법은 1981년 12월 31일에 제정됐다. 하지만 등록재산을 공개하지는 않았고 당초 엄포와 달리 재산 등록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하는 공직자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 규정을 마련하지 못했다.

전 대통령은 공무원의 재산등록이라는 채찍과 동시에 공무원 처우 개선이라는 당근 정책도 병행했다. 공무원의 기본급을 하후상박(下厚上薄) 원칙에 따라 평균 10% 올려주고 하위직 공무원에 대해선 수당을 올려줬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공무원에겐 등록금을 지원하고 기관장의 판공비를 인상했다. 또 대학생 자녀에게 학비를 빌려주고 무주택 공무원의 내 집 마련 지원책도 내놓았다.

공직자윤리법은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년과 1994년 잇따라 개정돼 범위가 4급 이상으로 확대되고 허위 등록에 대한 징계규정이 마련됐다. 2005년에는 1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식백지신탁제도가 도입됐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