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차를 재활용해 물고기 서식지 만들어요.’
손님을 싣고 전국을 누비던 기차는 30년이 지나면 제 역할이 끝난다. 수명이 다한 기차는 간혹 카페 등을 운영하려는 사람들이 통째로 사가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런 수요도 거의 없다. 단지 쇳덩이의 무게에 따른 가치만 인정받아 고철로 팔려 나가는 게 고작이다.
이렇게 고철로 버려지던 낡은 기차가 물고기의 서식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노후 철도차량을 ‘인공어초’로 재활용하는 것. 이는 차량의 원형을 살려 재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해양생물에게 훌륭한 서식지를 제공해 일석이조다.
○ 오염 물질 떼고, 파도에 넘어지지 않게
인공어초가 될 철도차량은 줄곧 바다에 잠겨 있어야 하기에 바닷속 환경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소재는 미리 제거한다.
내부의 천이나 목재 등은 물속에서 곧 부식돼 떨어져 나가면 쓰레기가 될 수 있어 제거 대상 1순위. 또 차량 표면의 페인트도 그동안 육로를 다니면서 비바람에 노출돼 유독성분이 거의 빠지긴 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벗겨낸다.
브레이크 등 차량 하부의 장치들은 볼트 등으로 연결돼 상대적으로 약해 오래되면 떨어질 수 있기에 미리 제거한다.
또 인공어초를 살펴보려는 다이버들의 안전과 고기잡이배들이 던지는 어구의 훼손을 막기 위해 뾰족한 부분도 없앤다.
철도차량은 세로는 길지만 가로는 짧아 태풍이나 강한 파도에 넘어질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다리를 덧붙이고 큰 돌을 넣어서 중량을 늘린다. 이는 인공어초가 해저 토양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 해양생물에게 서식 환경 제공
이렇게 설치된 인공어초는 바닷속 황량한 모랫바닥에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준다. 바다의 모랫바닥이나 개흙에서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기 어렵지만 인공어초가 해조류와 해양동물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단단한 터를 제공한다. 특히 어류는 장애물이 있거나 물의 흐름이 바뀌는 곳,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데 인공어초가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 인근 해역에 영양염류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양염류는 저층에 많이 가라앉아 있는데 조류가 어초에 부딪힐 때 영양염류도 위쪽으로 퍼지는 것. 이렇게 퍼진 영양염류는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플랑크톤은 다시 어류의 먹이가 돼 인공어초 주변에 다양한 어류가 서식할 수 있다.
코레일은 2006년 12월 경남 거제시 남부해역에 ‘시험용 철도차량 인공어초’를 설치한 뒤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조피볼락, 감성돔, 놀래기 등 다양한 해양동식물이 왕성하게 서식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 불법 저인망식 남획 막는 역할도
인공어초는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인공어초시설 사업의 경제성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인공어초 어장이 비시설지보다 어획효과가 최고 5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인공어초를 이용하는 어민은 자신의 소득 중 50% 이상을 인공어초에서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어민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 인공어초는 불법 저인망식 남획을 막는 역할도 한다.
하현철(해양공학) 박사는 “철도차량에서 용출되는 철이온은 식물성플랑크톤의 성장을 돕고 철도 구조물이 어류의 산란과 서식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며 “인공어초는 양식장처럼 가둬서 키우는 환경이 아니라 해양동식물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