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아내가…’본 30대 부부 대화 엿듣기

입력 | 2008-11-04 02:54:00


헤픈 여자 vs 사랑 많은 여자

남편 “외간남자와 바람피운 아내 결혼허락?… 바보아냐?”

아내 “사랑하는 남자와만 관계… 대상이 여럿일 뿐이야”

《※ 이 글에는 청소년이 읽기엔 부적절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 줄거리의 중요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이미 보신 분 혹은 절대로 보지 않을 계획인 성인 독자만 읽어주십시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18세 이상 관람가)는 사랑스러운 아내 인아(손예진)가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어. 그 남자와도 결혼하고 싶어”라고 남편 덕훈(김주혁)을 조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한 남편은 요구를 들어주고 급기야 일처다부(인아는 이를 ‘투 톱 시스템’이라고 명명한다)의 도발적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를 한 30대 부부가 보았다. 영화가 끝난 뒤 부부는 대화했다.

남편=영화 속 남편은 완전히 멍청이 아니야?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어떻게 결혼을 허락할 수 있어? 차라리 이혼하든가.


아내=당신은 사랑을 이해 못해. 남자가 한 여자를 온전히 사랑하면 그녀를 비록 이해하진 못할지라도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때가 있어.

남편=무슨 얼어 죽을 인정. 헤픈 여자를 두고….

아내=헤픈 여자라고? 인아는 헤픈 여자가 아니야. 사랑이 많은 여자라고 해야지.

남편=헤픈 여자와 사랑이 많은 여자의 차이가 있어?

아내=헤픈 여자는 사랑 없이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여자고 사랑이 많은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만 관계를 갖는 여성이지. 다만 사랑하는 남자가 여럿이 될 수 있을 뿐이지.

남편=궤변이 따로 없네. 그럼 여자들은 외간 여자와 연애하는 유부남을 왜 ‘바람난 놈’이라고만 하냐? 그중엔 헤픈 유부남도 있겠지만 사랑이 많은 유부남도 있을 거 아냐.

아내=이 영화는 그저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게 아니야. 여자는 남자와 결혼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 남자는 결혼 전까진 모든 걸 쏟아 부으면서 몰입해. 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아내를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해 더는 ‘떡밥’을 주려고 안 해. 여자는 달라. 결혼 전까진 주저하고 조심해. 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비로소 그 남자를 더 깊이 제대로 사랑하게 돼. 그때부터 여자는 자신을 남자에게 완전히 주고 마음껏 사랑해. 그래서 남자의 애도 낳아주는 거지. 인아는 단순히 새로운 남자를 원한 게 아니야. 두 번째 남자도 진정 사랑하고 싶었던 거지.

남편=갈수록 태산이네. 그런 주장을 영화가 하고자 했다면 원작소설처럼 진정 ‘다처다부제’를 주장했어야 해. 하지만 이 영화는 조선시대에 양반집 대감이 ‘퍼스트(본처)’와 ‘세컨드(첩)’를 두고 한지붕 아래서 살았던 상황을 고스란히 가져와 남녀 역학관계만 살짝 뒤집은 것뿐이어서 실망스러워.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가 퍼스트와 세컨드를 두었고 결국 모두 함께 살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가잖아.

아내=하지만 남자들로 구성된 퍼스트와 세컨드는 현실에선 불가능할걸. 영화에선 두 남자끼리 ‘형님 아우’ 하던데 이건 말도 안 돼. 남자와 여자는 욕망에서 차이가 있어. 남자는 독점하려 하고 여자는 나누려 하니까.

남편=정말 그럴까.

아내=아내와 남편이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서로에게 털어놓는 영화 속 장면만 봐도 확실히 차이가 나. 남편은 자기가 잠들어 이튿날 아침 일어날 때까지 아내의 일관된 ‘서비스’를 받는 모습을 성적 판타지로 품고 살아. 하지만 아내의 성적 판타지는 질적으로 달라.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사랑을 나누길 꿈꾸지. 남자는 자기 본위여서 서비스 받기만을 원해. 하지만 관계성을 중시하는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특별한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그 자체를 바래.

남편=으흐흐. 그럼 당신의 성적 판타지는 뭐야.

아내=말 안 할래.

남편=말해 봐. 말해 봐. 말해 봐. 말해 봐.

아내=음…. 알록달록한 꽃들이 끝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부드럽게 사랑하는 거?

남편=상대는 당연히 나겠지?

아내=그러면 그게 판타지겠냐? 추악한 현실이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