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美채퍼퀴딕 스캔들

입력 | 2008-07-18 02:52:00


미국 매사추세츠 주 에드거타운 지방법원.

“증인석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네.”

“이름이 무엇입니까.”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입니다.”

“1969년 7월 18일로 기억을 되돌려 보세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 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무대는 마서스비니어드 섬 인근 채퍼퀴딕 섬. 그는 그날 이곳에서 열린 한 파티에 참석했다. 오후 11시 15분. 케네디 의원이 선거 운동원 메리 코페친(당시 29세)을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면서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날 밤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채퍼퀴딕 스캔들’이 일어났다. 케네디 의원이 몰던 차가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물속으로 추락했는데, 운전자는 문을 열고 헤엄쳐 나왔지만 코페친은 차 속에서 숨지고 만 사건이다.

문제는 케네디 의원의 처신. 그는 하루가 지나도록 경찰에 사고를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사고 다음 날 아침, 깔끔하게 차려입은 케네디 의원이 호텔 로비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이 사건이 영원히 수면 아래에 있길 바랐을까. 하지만 어부 2명이 전복된 차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곧 코페친의 시신이 발견됐다.

케네디 의원은 정신없이 뭍으로 올라온 뒤 코페친을 구하려고 수차례 물에 뛰어들었지만 기진맥진해버려 구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그는 사고현장 근처 민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으며, 다시 파티 장소로 돌아간 사실이 밝혀졌다. 검시에서 코페친의 입과 코, 치마에 혈흔이 있었다고 검찰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재조사 없이 슬쩍 넘어갔다.

코페친의 부모는 부검을 원치 않았고 케네디 의원에게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딸 팔아 돈벌려고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들은 케네디 의원에게 약 9만 달러를, 그의 보험회사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

케네디 의원은 TV 회견에서 음주운전도, 피해자와 ‘부적절한 관계’도 아니었다고 세간의 의혹을 부인했고 이 사고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며 연민을 구했다. 그는 사고 현장을 떠난 죄로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 1년, 1년간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1980년 케네디 의원은 총탄에 목숨을 잃은 두 형의 뒤를 이어 케네디가에서 세 번째로 민주당 대통령 지명대회에 후보자로 출마했으나 지미 카터에게 패배했다. 의혹투성이 채퍼퀴딕 사건이 결국 백악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목을 잡아챈 것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