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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 학원-문화센터 등 요리강좌 수강생 30~40% 남성

입력 | 2008-05-21 03:05:00

회사원 강응현 씨(가운데)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한솔요리학원에서 친구인 서지훈 씨(왼쪽), 송민복 씨에게 한식 조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강 씨는 “함께 여행 가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회사원 강응현(30·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씨는 ‘인기 좋은 남자’다.

친구들은 그와 함께 여행을 가길 원하고, 직장 동료들은 회식을 해도 2차는 강 씨 집으로 가길 바란다. 인기의 비결은 뭘까.

탁월한 요리 실력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한솔요리학원에서 만난 강 씨에게 잘 만드는 요리를 묻자 자신있게 대답한다.

“요즘 중국요리를 많이 합니다. 깐소새우, 유린기, 양장피 등요. 아, 누룽지탕도 할 만하죠.”

지난해 9월 결혼한 강 씨는 연애시절에도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연애 초기부터 아내 김지선(32) 씨를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줬다.

김 씨는 “나도 잘 못 만드는 잡채를 척척 해내서 놀랐다”며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아귀찜을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강 씨에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쌈을 하려는데 돼지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파뿌리, 청주, 다진 마늘, 생강을 넣어봐. 그리고 커피도 조금 넣고. 색깔이 좋아지고 냄새도 없어지니까.”

○ “요리 잘하는 남편은 매력덩어리”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TV를 켜면 탤런트 김호진, 개그맨 박수홍 등 남자 연예인들이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요리사 경력이 있는 그룹 ‘클래지콰이’의 알렉스는 요즘 여성들에게 최고의 ‘훈남’으로 통한다. 대학생 권민주(23) 씨는 “남자가 요리를 잘하면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호감이 간다”고 말했다.

요리학원, 백화점이나 구청 문화센터에는 요리를 배우려는 남성들로 붐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문화센터 백승란 매니저는 “2년 전만 해도 요리반에 남성 수강생은 1명도 없었는데 요즘은 수강생 10명 중 3, 4명은 남성”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등에도 요리비법을 소개하거나 질문하는 남성이 많다. 송민복(29·서울 강남구 논현동) 씨는 “요리를 잘하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16일 저녁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엠쿠킹’ 요리강습실. 이영원(25·서초구 양재동) 씨는 사내 요리 동호회 동료들과 육개장, 한방돼지갈비, 물김치를 만들고 있다. 10명의 회원 중 4명은 남성이다. 이 씨는 “요리를 만들어 생긴 성취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요리하는 남성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오락’의 도구로서 요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와인 자체보다 와인 상식, 역사 등을 즐기듯 ‘문화 콘텐츠’로서 요리를 보는 시각도 많아졌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독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것도 앞치마를 두르는 남성이 많아진 이유다.

○ 정확한 요리 계량화도 한몫

요리하는 남성들은 대개 연령대별로 분류된다.

40대 이상 기러기 아빠와 맞벌이 아내를 둔 남성은 주로 식사용 요리를 배운다. 볶음밥, 미역국, 된장찌개, 멸치볶음, 콩나물무침 등 생활에서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반면 20, 30대 미혼 남성 중에는 취미, 친교를 위해 요리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여성이 선호하는 스파게티, 샐러드 등 이탈리아 요리나 케이크 등 제빵 제과 조리법을 주로 배운다. 여자 친구와 함께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하며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요리업계에 불고 있는 레시피(recipe·조리법) 공개 바람도 남성들의 요리 도전에 영향을 미쳤다. 요즘 젊은 요리사들을 중심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정확히 계량화해 공개하고 있다.

이인영 수도요리학원 연구실장은 “과거에는 경험과 눈대중으로 요리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요리방법이 최대한 계량화됐다”며 “남성들도 요리책이나 인터넷에서 나온 대로 계량스푼, 계량컵을 써서 용량대로 만들면 어느 정도 음식 맛이 난다”고 말했다.

○ 양식은 스파게티보다 바비큐가 무난

전문가들은 주변에 ‘요리 잘하는 남자’로 입소문을 내고 싶다면 ‘찜’ 요리가 좋다고 말한다.

갈비찜, 닭볶음탕 등 찜 요리는 감자, 고기 등 재료에 양념을 넣은 후 물을 붓고 조리면 된다. 초보자라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또 완성되면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상대에게 대단한 요리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부침 요리는 만들기가 어렵고 부피도 작아 과시 효과도 내기 어렵다. 찌개류는 재료를 넣는 순서에 따라 국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초보자가 도전하기 쉽지 않다.

양식의 경우 스파게티보다는 바비큐가 좋다. 스파게티는 향신료를 넣는 타이밍과 양을 맞추기 어려워 초보자가 도전할 경우 특유의 토마토향을 내기 어렵다. 바비큐는 손힘이 좋은 남성들이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세게 주물러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 또한 손님들에게 대접할 때 직접 고기를 칼로 썰어 주면 섬세하면서도 요리에 능숙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술안주용 요리도 남성에게 유리하다. 요리연구가 김노다 씨는 “여성은 술안주에 약한 반면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술자리가 많다 보니 ‘맥주에는 기름진 감자튀김, 소주에는 매콤한 해물볶음’ 식으로 술에 어울리는 요리를 잘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요리입문 어떻게…

열 가지보다 한 가지를

동호회-학원도 권할 만

“나도 요리를 잘하고 싶다. 그렇지만 식칼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

상당수 남성들이 요리를 배워 보고 싶지만 막막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디서, 어떤 요리를 배우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 유발’이라고 말한다. 만들고 싶은 음식 하나를 정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식 일식 중식 등 요리 종류를 크게 정하기보다 볶음밥 스파게티 등 구체적인 음식 하나를 잡는 것이 좋다. 10가지 요리를 배우기보다 하나를 제대로 잘하는 것이 낫다.

요리는 하나를 잘하면 다른 요리로 응용이 가능하다.

일단 라면으로 정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끓여 본다. 또 고추장에 볶아 먹는 라볶기, 튀겨 먹는 라면땅, 차갑게 먹는 냉라면 비빔라면 등으로 응용해 본다. 전문가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재료를 넣고, 얼마나 끓이는지 등 요리의 기본기를 체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특정 요리 하나를 배우고 싶은 남성이라면 요리 전문학원보다는 요리 동호회나 지방자치단체, 백화점 등이 운영하는 문화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요리 동호회는 20∼30명의 회원이 요리 주제를 정해서 전문가를 초빙해 요리를 배우기 때문에 부담이 작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요리만 골라 배울 수 있다.

문화센터 요리강좌는 요리를 고르기 쉽고 수강료도 월 2만∼3만 원(재료비 3만∼4만 원 추가)으로 저렴한 편이다.

기초부터 탄탄히 배우고 싶다면 요리학원을 찾아 기초과정부터 듣는 것이 좋다.

요리학원에는 취미반도 있지만 주로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복어요리 등 국가가 정한 기본 자격증에 따라 재료 다듬기와 썰기에서부터 조리 순서, 방법까지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 한솔, 수도, 동원 등 요리전문학원에서 요리를 배우면 월 수강료는 취미반은 20만 원대, 자격증반은 30만 원대다. 음식점을 내고 싶다면 전문학원에서 2년 정도 요리를 배워야 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