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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뉴타운, 올드타운

입력 | 2008-04-25 20:05:00


N서울타워로 올라가는 남산 남측순환로에 서면 한강 건너로 강남 3구를 가득 메운 아파트와 고층빌딩의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속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풍경에 뿌듯한 생각이 들면서도 도시 외관이 너무 단조롭고 답답하단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바다가 없는 홍콩의 전경과 비슷하다.

강북에는 불량주택 지구도 많고 강남에 비해 집값은 낮지만 주택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한강변 한남동, 북한산 자락의 평창동 구기동 성북동에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꾼 고급주택이 모여 있다. 삼청공원을 지나 성북동 길을 달리다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블비치 골프장 인근의 세븐틴 마일스 주택가나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를 지나는 느낌이 든다. 꽃피는 봄철에 평창동 주택가는 배경의 북한산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경치를 만들어낸다. 부자들이 돈을 들여 집과 정원을 잘 가꾸어 놓으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는 외부효과(externality)를 이웃에 제공한다.

서울 강북은 문화유산

서울 강북은 현대와 전통, 자연과 인공, 산과 강이 잘 어우러진 도시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처럼 유서 깊은 고궁과 유적에서 고도(古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일대 한옥지구는 서양 대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주거단지다. 최근 삼청동 일대는 한옥을 개량한 화랑 전통가게 음식점이 들어서 독특한 풍취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에는 100여 개의 한옥 밀집지구가 남아 있다. 한옥 주거지는 궁궐 같은 문화재와 더불어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강북에는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같은 경관이 뛰어난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연극 공연장이 즐비한 대학로도 강북의 명소다. 복원된 청계천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서울의 명물이 됐다. 남산 일대의 중구와 용산구도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나가면 용산 미군기지 자리에 생길 공원을 둘러싸고 ‘또 하나의 그림’이 될 것이다.

총선 때 서울 강북에 뉴타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강북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오차범위를 넘어 약간 앞서 나가던 지역은 뉴타운 바람에 모두 역전됐다는 말이 들린다. 강남 집값이 뛸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가슴이 쓰렸던 강북 거주자들에게는 ‘안정론’ 또는 ‘견제론’보다 뉴타운이 훨씬 잘 먹혔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 은평 길음 왕십리 세 곳을 시범사업지로 정해 뉴타운 개발을 시작한 것은 불량주택 개량과 강남북 격차의 해소라는 의미가 있었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1, 2, 3차로 나누어 26곳에서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의 거의 전 지역구에서 뉴타운 사업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이 공약이 모두 실천되면 강북의 80%가 아파트로 채워질 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1∼3차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진척된 뒤에라야 추가 뉴타운을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 시장이 선거 기간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뉴타운 공약을 내건 한나라당 후보들을 도왔다며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유인태 의원의 고백처럼 민주당 후보 23명도 막판에 뉴타운 공약을 들고 나왔다.

서울시는 여야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다. 한나라당 18대 당선자 워크숍에서 서울지역 당선자들이 별도로 만나 서울시장 성토대회를 열었다. 홍준표 의원은 오 시장이 끝내 버티면 18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뉴타운 선정 권한을 서울시에서 빼앗아 올 수 있다”고 터무니없는 압박을 했다.

뉴타운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공산이 크다. 뉴타운 지정설(說)만 나와도 해당 지역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까지 부동산 값이 뛰는 판이라 ‘뉴타운 로또’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영향을 받는 강북지역 거주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올드타운의 진가도 살려야

여야 정치권의 공세와 주민의 압박 사이에서 버티기가 여간 힘들지 않게 됐지만 서울시가 뉴타운 열풍에 휘말려 중심을 잃으면 안 된다. 세계 곳곳을 돌아봐도 북한산과 한강에 둘러싸여 600년 정도(定都)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 같은 도시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주거환경이라는 측면에서도 한옥 밀집지역을 비롯한 강북 올드타운을 회색 아파트 군(群)으로 바꾸어놓을 일은 아니다. 보존과 개발을 조화롭게 진행해 ‘인류 문화유산’ 서울을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