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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한반도 대운하와 KTX

입력 | 2008-04-11 21:10:00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려면 복잡한 행정절차를 하나로 묶는 특별법이 필수적이다. 한나라당은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를 빼고 과반 의석을 달성했지만 당 안팎에서 ‘친박(親朴)’이 60석 가까이 당선된 데다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던 이재오 의원의 낙선으로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대운하에 반대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아직 그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은 대운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개발 연대에 대형 국책사업에 반대했다가 먼 훗날 웃음거리가 된 경우가 많아 대운하 반대도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1960년대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는 야당과 언론이 기를 쓰고 반대했다. 40년 전 포항 영일만에 포항제철을 건설할 때도 야당과 언론은 “또 하나의 부실기업이 탄생하는가”라고 개탄했다. ‘멀쩡한 김포공항을 놓아두고 인천공항을 왜 만드느냐’는 불평과 함께 ‘개항을 연기하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인천공항은 종합평가 세계 1위의 공항으로 우뚝 섰다.

대운하 어려워진 議席 구도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가기반시설(SOC)에 관한 한 많은 업적을 남겼다(군사반란과 천문학적인 뇌물수수만 떠올리느라 이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경부고속철도와 인천공항, 고속도로망 확충이 노 전 대통령 때 첫 삽을 뜬 것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와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200만 채를 일거에 지어 주택가격을 상당 기간 안정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둑을 막는 데만 16년이 걸려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토지를 조성한 새만금도 그때 시작했다.

경부고속철도 서울∼대구 구간 개통 4주년을 맞아 수송 분담률을 조사한 결과 고속철도(KTX)가 62.5%로 압도적이었다. 비행기가 18.5%였고 상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고속도로는 승용차 7.6%, 버스 6.2%였다. 2010년 대구∼부산 구간이 완공되고 나면 KTX의 분담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고속철도가 여객 수송을 거의 전담하게 되면 일반 철도는 화물 전용으로 바뀌어 물류(物流)를 개선한다.

고속도로 교통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철도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동차 산업과 고속도로가 발전하면서 철도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유가 상승이 철도산업의 부흥을 불렀다. 여기에 트럭운전사 부족과 고속도로 정체도 거들었다. 2000년 이후 철도 노선을 확장하고 부대 공사를 하는 데 10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앞으로 120억 달러를 더 투자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환경주의자들도 철도의 부흥을 환영한다. 전력을 사용하는 고속철도는 고유가와 지구온난화 시대에 경제성이 높은 환경친화적 교통수단이다. 우리나라 환경주의자들은 헛발질에 열심이다. 지율 스님은 꼬리치레도롱뇽 살리기 단식투쟁을 벌여 두 번씩 경부고속철 공사를 중단시켰다.

3면이 바다인 반도 국가에서 국토를 종단(縱斷)하는 대운하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널리 존재한다. 30분∼1시간씩 걸려 통과하는 갑문과 터널이 10여 개나 있는 운하가 물류와 관광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강 낙동강 금강을 수로(水路)로 이어 수자원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운하와 개념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규모 국책사업은 공사기간이 10∼20년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 국민의 포괄적 동의와 여야의 고른 지지 없이 5년 단임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리고 전임자가 시작한 사업을 이어받아 마무리를 잘 짓는 것도 훌륭한 업적이다. 물류와 관광을 위한 토목공사라면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의 완공을 앞당기고 나아가 호남고속철도(오송∼목포)와 동서고속철도(서울∼강릉)를 건설하는 것이 나은 대안(代案)이 될 수 있다. 철도 르네상스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맞다.

고유가시대 代案 고속철도

국토개발과 토목공사에 관한 한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명박 대통령만큼 통달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원로들과의 모임에서 “대운하는 청계천처럼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던 수도 이전을 무리하게 추진해 이제 와서 그만두기도 어렵게 됐다. 수도 분할로 인한 비능률과 낭비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널리 의견을 들어 대운하가 국가적 낭비와 대통령의 실패를 부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