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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만일에 한글이 없었다면?

입력 | 2008-01-14 02:58:00


세계 최강 ‘인터넷 코리아’

비결중 하나는 바로 한글

《재미있는 농담 한 토막. 한 범죄자가 경찰에 붙잡혀 취조를 받고 있었다. 경찰이 여러 가지를 조사하던 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범인의 대답이 희한했다. “쓸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은 모릅니다.” 경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그게 말이 되느냐?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을 모른다면 몰라도, 쓸 줄을 아는데 읽을 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범인은 계속 그렇다고 우겼다. 그러자 경찰은 한번 글을 써 보라며 종이와 연필을 줬다. 범인은 종이 위에 뭔가를 휘갈겨 썼다. 그것은 도저히 글씨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은 화가 나서 다그쳤다. “야, 이게 무슨 글씨야? 도대체 뭐라고 썼는지 한번 읽어 봐.” 그러자 범인은 태연스럽게 말했다.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쓸 줄은 알지만 읽을 줄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네스코 문맹퇴치 공로상 이름도 ‘세종대왕 문해상’

인간의 문명은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다. 근대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인구가 아주 적었다.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자나 종교 지도자, 행정 관료가 아니라면 문자를 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그때는 위에 나온 범죄자처럼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도 많았다. 그러다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대중 교육이 보편화됐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이제 기본 능력이 됐다.

인류 문명이 최고조로 발전한 21세기에도 문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유네스코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 전 세계 인구의 문맹률은 50% 정도다. 놀라운 수치가 아닌가? 여기에도 통계의 함정은 숨어 있다. 이 수치에 어린 아이까지 포함된 것. 15세 이상 인구로 한정하면 20%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대단히 높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에서 볼 수 있듯이 문맹률은 가난한 나라일수록 높다. 그 상관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이라고 해서 문맹률이 낮은 것은 아니다. 막강한 경제대국 미국에도 문맹자가 많다. 17세 청소년의 17%가 문맹이라고 하니 엄청난 일이 아닌가. 꼭 가난한 계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미국프로야구나 미국프로농구 선수들 가운데도 문맹이 꽤 많다. 구단에서 억지로 교육을 시키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도 우리와 비슷한 나라는 일본 정도일 것이다. 그 비결에는 ‘한글’이라는 뛰어난 발명품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한 한글은 언어사적으로도 대단히 특이하다. 한글은 세계 모든 문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리고 상형문자같이 서서히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발명해 냈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례로 꼽힌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세워 몇 년 만에 완전히 체계화한 문자는 한글뿐이다.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문자가 없는 지역에 한글을 보급해 문맹을 퇴치할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만큼 배우기 쉽고 여러 가지 발음을 정교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500년 전 조상이 남겨 주신 유산이 이렇듯 지구촌 문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있는가? 유네스코는 매년 문맹 퇴치에 기여한 단체를 선정해 상을 주는데, 그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文解)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라는 것을.

미국의 청소년 가운데는 채팅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평생 배워도 한자를 다 알지 못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약자가 많이 생겨나면서 실용화됐지만, 한글에 비하면 복잡하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도 매우 불편하다. 한국의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한글이라는 문화 인프라가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께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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