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냅킨 혹은 TS 엘리엇의 ‘황무지’ 중 ‘Ⅳ. Death by Water’에 대한 한 해석
-조 현
“사랑하는 엘리엇, 저는 지난주 당신과 살롱에서 만날 때 테이블 위에 놓여진 종이냅킨에 대해 얘기했던 것을 심사숙고하고 있어요. 그때 당신은 제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식으로 종이냅킨을 접고 있었지요. 저는 그것이 당신의 불안심리를 내보이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곧 종이냅킨과 그리고 그것을 접는 그 행위에는 매우 심오한 철학이 숨어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지요. 그것은 지난 세기에 신사계급의 가정에서 유행한 양치류 식물 기르기나 혹은 거실에 수족관을 놓는 것과 같은 문화적 취향과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지요. 그래요, 그것은 문화의 탄생과 확산이자, 동시에 불임(不姙)을 뜻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엘리엇, 그건 마치 지난 4월, 우리가 산책한 템스 강 강변의 꽃나무가 싱그러운 초록으로 싹을 돋아냈지만, 전 거기서 이미 불모를 엿보았다고 당신에게 속삭인 것처럼 말이죠.” ─ 1918년 5월 1일, 메리 설리번이 T S 엘리엇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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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이전에 손가락이 있었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냅킨에 대해서도 똑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오래전 발견된 한 희귀본은 주장하고 있다. 즉, 1780년에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루이 드 클로상 남작은 다음과 같이 썼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나라의 특이한 점은 부유층의 가정에도 냅킨이 없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냅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식탁보로 입을 닦아야 한다. 참으로 볼썽사나운 일이다.”
루이 드 클로상 남작의 이러한 관찰이 그리 심각한 편견은 아닌 것이 당시 유럽 지역에서는 광범위하게 냅킨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고대의 훈족조차도 냅킨과 유사한 위생장치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보다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영국에서 더욱 발전했다.
이를테면 영국의 작가 새뮤얼 페피스가 1668년에 쓴 일기에는 “식탁보를 깔고 냅킨을 접어 주는 친구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게 어찌나 보기 좋았던지, 그 친구에게 40실링을 주어 아내한테 요령을 가르치게 해야겠다고 작심했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냅킨을 멋진 모양으로 접는 사람은 영국에서는 수세기 동안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영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드러낸다.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주방장이었던 자일스 로스는 ‘바구니 속의 둥지에 깃들인 비둘기’ 모양을 비롯해서 모두 26가지 모양으로 냅킨을 접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냅킨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일종의 예술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19세기 영국에서 확산된 다양한 냅킨 접기에 대한 가이드 팸플릿들은 일종의 예술적 유행인 동시에 계급적 과시의식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사실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기간 동안에 신사복에 있어서도 근엄하면서도 실용적인 워드로브(wardrobe)가 유행하면서 엄숙한 준(準)귀족풍의 시민계급의식이 복식에 있어서도 완성되는 현상과 비견된다. 즉, 귀족풍의 의장의례가 신사계급을 거쳐 일반 소시민에게까지 확산되는 경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취향의 역사를 사회학적으로 숙고한 끝에 “문화와 취향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인물이 이렇게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제시한 데에는 그가 프랑스 남부의 촌구석 출신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그는 파리로 상경한 후 시골뜨기라는 개인적 콤플렉스의 해소를 부르주아적 상징가치의 재해석을 통해 극복하려는 저의를 내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화적 발화(發話)의 배후에는 이러한 계급적 이해가 있었다는 점은, 또한 부르디외의 언명에 우리 시대가 감히 경청할 만한 깊은 성찰이 숨어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그리고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골프가 급속히 대중화된 데에는 이 스포츠가 본래는 귀족 스포츠였다는 점, 따라서 이러한 스포츠 취미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계급적 지표로써의 개인의 취향을 과시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현시욕, 주로 그러한 욕구에 따라 인간은 또한 멀쩡한 산과 들판을 깎아 잔디에 농약을 실컷 친 다음, 그리고 정답게 담소하며 그 위를 걸어 다녔던 것이다. 어쨌거나 19세기 영국 사회의 냅킨에 담긴 사회적 열풍 현상 역시 몰개성화 혹은 소시민적 자기과시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냅킨의 역사를 들춰보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사건이 한 가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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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65년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는 한 영국인이 매물로 내놓은 ‘신세기의 문화적 발현과 불모: 시인이 견지해야 할 종이냅킨 혹은 종이냅킨 접기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하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1918년작)이라는 소책자가 다른 10여 권의 희귀본들과 함께 약 10만 파운드에 한 미국인 실업가에게 낙찰되었다. 이 희귀본을 낙찰받은 미국인 존 프리덤은 ‘해피시트’란 치질 환자용 좌변기 생산으로 자수성가한 실업가로서, 그는 함께 구입한 다른 희귀본들과 함께 자신의 영국 녹스턴 별장의 컬렉션룸에 보관해 두었다가 1981년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모두 소실하게 된다. 그 불행한 소식을 비서로부터 전해들은 프리덤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녹스턴 지역 지방신문사는 그해 11월 27일자 단신란에서 전했다.
“뭐 ‘종이냅킨’이 불에 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다음번엔 ‘강철포크에 대한 우아한 철학’을 사야겠어요. 뭐 그건 불에 타더라도 보험회사를 쪼아대기에 충분한 흔적은 남길 것 아니겠어요? 어쨌거나 우리 회사의 해피시트 시니어를 마음껏 즐겨 주세요. 일단 거기에 앉으면 눈앞에서 10만 파운드짜리 지폐덩어리가 불에 타더라도 엉덩이만큼은 천국에 온 듯 말랑말랑해진다니깐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수성가한 한 미국인 백만장자의 조크가 시의적절한가 여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 T S 엘리엇과 교류한 일련의 편지들이 발견되면서, 그의 작품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연인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메리 설리번 양의 저작이라는 점이 최근에 와서야 서지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 오늘날 T S 엘리엇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인 예일대학교의 필립 W 하운즈 교수(국제T.S.엘리엇협회 명예회장, MKY3731098220)는 지난 학회 폐막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새롭게 발굴된 편지들로 인해 T S 엘리엇이 영국에 귀화하게 된 계기와 함께 그의 시 세계의 형성에 설리번양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릴케나 니체에 대해 루 살로메가 그랬듯이 말이죠. 따라서 설리번 양의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이 소실된 것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제길.”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20세기 초에 소량 출간된 한 에티켓 사전에 설리번 양의 이 저서가 부분적으로 인용되어 엘리엇의 시 세계에 미친 이 처녀의 팜므 파탈적 영향을 좀 더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즉, 1919년 런던에서 발간된 ‘신사를 위한 에티켓 가이드’라는 책자에는 ‘냅킨의 우아한 사용법’이란 소제목 아래 설리번 양이 책임 저술한 것으로 표기된, 종이냅킨의 기원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물론 이것은 재야문인이었던 설리번 양의 이름이 공식적인 활자로 등장하는 유일한 서적이기도 하다.
“원래 냅킨은 영국 상류계급의 연회에서 면직포나 리넨천으로 직조된 것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95년 빅토리아 여왕의 외조카인 로저 해럴드 경이 주최한 런던의 왕립천문학협회의 신년 신입회원 환영만찬에서 일종의, 최초로 종이냅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왕립천문학회에서는 아이다(Ida) 등 일군의 소행성을 발견한 공로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J 팔리사(Palisa)가 새롭게 왕립천문학회 회원으로 영입되는 동시에 대영제국의 기사작위를 수여받게 되었는데, 팔리사는 기사 수여 후의 오랜 관례대로 자기의 귀족 문장(紋章)을 새롭게 창설하여 참석자에게 발표할 요량으로 자신의 가문 문장을 하얀 종이에 인쇄하여 각자의 식탁 테이블에 놓아두었는데, 왕립천문학회의 이러한 관례에 무지했던 해럴드 경이 이를 냅킨으로 오인하고 식사 중 입을 닦았다는 것이다.(해럴드 경이 이러한 일탈행동을 한 것은 당시 만찬장의 조명이 무척 어두웠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당시 상원의 반대로 인도 총독으로 부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경의 가벼운 반항이었다는 설이 있다. 아마도 둘 다 반반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어쨌건 일단, 해럴드 경이 서브오디너리(sub-ordinary)로 바다물결과 갈매기 장식이 새겨진 그 문장 종이로 입을 닦는 순간, 불쌍한 오스트리아인 팔리사 역시 할 수 없이 그 종이로 입을 닦아 주최자인 해럴드 경의 난처함을 고결하게 무마해 주었다는 것인데, 물론 모든 참석자가 이를 그대로 따라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음 해부터 왕립천문학회의 만찬에서는 리넨천 대신 부드러운 펄프 재질의 종이냅킨이 사용되었고─왜냐하면 해럴드 경이 여전히 왕립학회의 회장으로써 다시 주최자가 되었으므로─, 이것이 종이냅킨의 시초인데, 이 냅킨이 이후 영국의 전 계급으로 빠르게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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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의 우아한 사용법’이란 소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설리번 양은 종이냅킨의 의미를 에티켓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현대문명에 대한 하나의 문화론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그녀가 제시한 주장은 T 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의 탄생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하게 해석될 수 있다.(특히 설리번 양이 이 글을 발표한 해가 1918∼1919년이며, ‘황무지’는 불과 3∼4년 후인 1922년에 발표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설리번 양은 종이냅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최근 하나의 유행으로써 고착된 종이냅킨의 사용은 금세기 우리 문명의 종착역이 어디일까 하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한다. 그것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동시에 동반한다.
우선 좋은 소식: 문화라는 교양이 소시민계급 혹은 노동자계급으로 확산된다는 점.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리넨 천으로 직조된 냅킨의 사용은 귀족계급 혹은 신사계급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종이냅킨의 ‘발명’과 함께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냅킨 문화의 확산에서 보건대, 선술집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울려 퍼지거나 혹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노동자계급에서도 읽히는 미래를 예견한다. 아마도 50년이 지난 후에는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도 적어도 10권가량의 ‘즐기는 용도’의 책이 소장되리라고 추정한다. 아니 어쩌면 20권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모든 문화적 소산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심지어 노동자계급에서도 자기 초상화를 하나씩 가지는 날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문화의 보급은 노동계급에 대한 교양의 보편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나쁜 소식: 그러나 종이냅킨의 사용은 곧 세계를 ‘황무지’로 만들 것이다. 먼저 종이냅킨은 당연하겠지만, 나무로 만든다. 즉 영국의 노동자계급의 욕망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곧 우리가 더 많은 땅을 개간하고 더 많은 식민지를 건설,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가 영국의 노동자계급을 먹여 살릴 만큼 크다 할지라도 다른 유럽의 노동자들이나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을 터이므로, 그리고 지구는 무한하지 않으므로 어느 순간 욕망의 충족에 있어 자원의 빈약으로 인한 결정적 단절이 올 것이다. 그러나 자원의 부족보다도 더욱 나쁜 것은 무조건적인 복제나 유행 추종에 따른 문화의 보편화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타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는 강하게 불로 담금질된 자의 것이거나 그에 못지않게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누리는 자의 몫이지, 남들이 한다고 맹종하는 자의 문화는 아닌 것이다. 물론 현대 영국의 모든 교양계급이 이러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문화의 몰개성화에 대한 이러한 비관적 전망은 또한 대중들에도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적용할 수 있다. 즉,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추종되는 문화란 곧 고르디아스의 매듭이자 판도라의 상자인 것이다.”
설리번 양은 이 소챕터에서 문화의 몰개성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세기 영국의 양치류 재배 유행을 논거로 제시하였다. 즉, 설리번 양은 데이비드 앨런이 쓴 ‘빅토리아 시대의 양치류 열기’를 인용하면서 “거의 모든 여성이 달려들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자 양치류에서 처음에 풍겼던 고상함은 점차 사라지고”, “너무 흔해 빠진 탓이었는지 놀랍게도 양치류 키우기는 어느새 천박한 취미활동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적었다.
최근 발견된, 엘리엇에게 보낸 1918년도의 설리번 양의 편지에 따르면 그녀는 필립 고세가 쓴 ‘수족관(The Aquarium)’에 대한 비평을 통해서도, 19세기 양치류 재배 유행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계급들이 자신의 거실에 수족관을 설치하는 이상열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며, “문화는 감정을 쏟아 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 도피하는 것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감정이고 진실한 개성이다”라는 결론을 적고 있다. 이 결론의 앞 문장에서 ‘문화’를 ‘시(詩)’로 바꾸면 이는 불과 1년 후 엘리엇이 ‘전통과 개인적 재능’(1919년작)에서 발언한 그 유명한 구절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편지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개념, 즉 ‘말뿐인 낭만의 해악’, ‘예술가의 발전은 계속적 자기 희생 혹은 진정한 개성의 확립’ 등의 사유는 엘리엇에게 끼친 그녀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반면, 엘리엇이 생략해 버린 뒷문장의 묘한 뉘앙스는 곧 엘리엇과 설리번 양 사이의 미묘한 지적 거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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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견된 설리번 양과 엘리엇 사이의 일련의 편지들에 근거하여 작년 국제T.S.엘리엇학회에서 매우 시론적인 논문 ‘‘황무지’와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과의 문화철학적 그리고 통계학적 연관성’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서 도쿄대의 마쓰모토 사가이 교수(MJK2239202279)는 설리번 양의 편지 26통에 산재하여 등장하는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의 단편적 인용들을 분석한 결과, 이 책에 이미 ‘황무지’에 나타난 주요개념들이 선행하여 등장한다고 통계학적으로 주장하였다. 즉, ‘황무지’에 나타난 시어들 중 약 23.5%가 직접적으로 ‘종이냅킨의 우아한 철학’에 등장하고(간접적으로 유사한 어휘까지 포함하면 약 67.8%가 일치하고), 그중에는 특히 도저히 우연이라 할 수 없는 ‘플레바스를 생각하라(Consider Phlebas)’와 같은 발상이나, ‘다야드밤(Dayadhvam)’, ‘담야타(Damyata)’와 같은 이국의 외래어들이 그러하다고 열거하며, 따라서 ‘황무지’의 실질적인 저자는 메리 설리번이라고 주장했다. 마쓰모토 교수의 결론은 매우 센세이셔널한 주장인 동시에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주장이지만, 확정적인 결론은 아무래도 매우 적은 부수로 발간된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의 또 다른 원본이 발견되어 학계의 권위 있는 서지학적 검토를 거쳐야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T S 엘리엇에 끼친 에즈라 파운드의 영향력을 더 중시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메리 설리번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한다. 첫째, 그녀가 실존 인물이라는 확증이 부족하며(특히 젊은 시절 요절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생몰연대가 불분명하며), 둘째, 엘리엇의 기존의 저서나 편지 및 당대의 여하한 인물의 기록 어디에도, 즉, 새롭게 발견된 편지 묶음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미국인 실업가 존 프리덤의 기사가 실린 녹스턴 지방지 사본 외에는 그녀와 관련된 어떠한 공식적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이들 연구자들은 다만, ‘신사를 위한 에티켓 가이드’라는 책에 나오는 설리번이란 이름은 우연한 일치라고 간주한다), 셋째, 이것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하는 논거인데, 새롭게 발견된 그녀의 편지의 섬유질에서는 2024년에 최초로 시험가동된 넵튜늄 중성미자 발전기의 초기복합물 변이구조의 영향이 미량 발견되는데, 이는 이 편지가 위조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준비되어 있다. 첫째, 생몰연대에 대한 확정적 기록 부족은 2042년 발생한 인류종말사건─넵튜늄 신에너지발전소 폭발사고로, 넵튜늄 원소계열의 변이물들이 대량으로 대기에 살포되어 인류가 모두 멸종한─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혼란으로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둘째, 엘리엇의 기존 기록에 설리번 양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것은, 그것은 인간 특유의─그것도 남성 특유의─ 지적인 자존심에 의한 일종의 질투라고 볼 수 있으며(이를테면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과의 관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셋째, 인류멸종사건을 불러일으킨 넵튜늄계열 변이물질─산소호흡에 의존하는 생체조직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틀림없이 사린가스나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일 수 있는 복합물─과 초기 발전소 모델의 복합물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후기복합물이 특정한 화학적 조건에서 악티늄 계열의 변이물들과 간섭하여 베타(β)붕괴하면, 그 결과 초기복합물과 같은 구조를 가질 수 있음이 이미 2090년대 지구대기 정화 과정에서 밝혀진 바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과거 2110년대까지는 정설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학계에서 폐기된 ‘좀비 허구설’의 사례는 메리 설리번의 편지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211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20세기 후반기부터 21세기 중반기까지 인간사회에 나타나는 ‘좀비’라는 개념은 하나의 ‘허구적 상상’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통설이었지만, 2110년대 중반, 과거 인류의 광학매체기록물들을 해독할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됨에 따라―그리하여 인간 연구에 있어 하나의 기념비적 분수령을 이룬 디브이돌로지(DVDolgy)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부수적으로 발굴된 수많은 좀비영상물로 인해 학계의 상황이 역전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과거에는 아무 의미 없는 조그만 원반 디스크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영상정보가 해독되는 순간 드러난 수많은 좀비영상들은, 그 규모나 심도 면에서 ‘실존하는 것이 마땅’했을 정도로 폭발적 규모의 정보를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실존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왜 인간들은 이렇게 많은 공포를 쏟아 냈을까 하는 데서 시작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전개하면 ‘그것은 존재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주었다’는 결론이 타당하게 유추되는 것이다.
‘실재했기 때문에 실재했다’ 즉, ‘실재했기 때문에 반응했다’라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공리(公理)에 따라, 메리 설리번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이러한 편지가 존재할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즉, 좀비가 당시의 생화학적 사고 혹은 환경오염으로부터 출현한 변종인간을 가리키는 사회학적 용어인 것처럼―또한 ‘깜둥이’나 ‘유대인’이나 ‘양키’와 같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 역시 결국은 사회학적 실체였던 것처럼―, 메리 설리번 역시 실재했던 여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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