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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文氣가 흐르는 한반도 책벌레들아, 들끓어라

입력 | 2007-10-13 03:01:00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강명관 지음/380쪽·1만5000원·푸른역사

◇세계가 높이 산 한국의 문기/최준식 지음/320쪽·1만2000원·소나무

10년 전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라이프’는 의미 있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1000년간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100가지 사건.’ 1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

얼핏 이해가 안 가는 선정이다. 한낱 인쇄술 발명이 종교개혁이나 제1·2차 세계대전 같은 사건을 제치다니.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이렇게 설명한다. “금속활자를 쓰는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인간사의 혁명이다. 이 기술 덕에 인간은 처음으로 혼자 사고하기 시작했고, 개인주의를 시작으로 자본주의 산업주의 민족주의가 꽃피었다.”

‘세계가 높이 산 한국의 문기’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의 저자들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겉으로 보이는 여러 발전 속에 숨은 힘, 그것은 문(文)의 족적이요 지식의 위대함이다. 한 사회의 흥망성쇠를 재는 바로미터 역시 책에서 배운다고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가 높이 산…’은 우리 사회를 북돋우는 장구 가락이다. 저자는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한국인은 우리 역사나 문화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우월감도 문제지만 열등감을 가지기엔 자랑스러울 일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쇄문화다. 책에 나오는 사례 하나.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했던 프랑스 함대의 주베르라는 해군 장교는 약탈 뒤 한숨을 내쉬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고 자존심도 상한다. (조선은) 아무리 가난한 집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

저자는 당당하고 떳떳하다. 현존하는 자료 중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세계 최초의 인쇄본 ‘무구정광다라니경’,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 ‘승정원일기’, 최대의 단일 왕조 역사서 ‘조선왕조실록’…. 이렇게 자랑할 게 많은데 왜 구부정하게 구느냐고 일갈한다. 그 총체적 발현을 신기(神氣)와 비교해 ‘문기(文氣)’라고 명명했다.

전작 ‘한국인을 춤추게 하라’(사계절)처럼 저자의 필체는 신명난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다운 해박한 지식을 펼치는 한판 ‘굿’이다. 존댓말로 일관해 살짝 역사 선생님 분위기가 나긴 해도 졸음 나는 지루한 강의는 아니다.

반면 ‘책벌레들…’은 같이 출발했으나 도착지는 다르다. 조선시대 출판문화에 영향력을 발휘한 22명의 인사(단재 신채호 선생까지 포함해)를 살피며 때로는 칭찬을, 때로는 회초리를 든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의 통렬한 비판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화폐 속 인물들, 세종대왕 이황 이이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황과 이이는 주자학(성리학)에 너무 천착해 다른 학문의 발전을 막고 사대부 계급 강화에 일조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으나 대량 인쇄를 통해 일반 백성에게 지식을 쌓을 기회를 주진 못했다고 지적한다. 비록 ‘월인석보’ 등 한글 인쇄본이 없진 않았으나 배포의 의미가 없었다는 것.

저자의 삐딱하게 보기는 멈추지 않는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한 사대부의 지식 문화 축적물로, 이를 실학의 비조로 보는 건 한국사의 자생적 근대에 대한 강박관념”이라 성토한다. ‘호학의 군주’로 불린 정조 역시 “신하의 문체를 검열하고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저자가 비판만 가한 건 아니다. 짚을 건 짚되 냉정했을 뿐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조하긴 어렵지만 이런 다양한 시각이 함께 논의될 때 문화는 발전한다. 조선은 물론 지금의 세상도 책벌레가 만들기 때문이다. 더더욱 많은 책벌레가 나오길. 더 많은 논의가 샘솟길.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