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안보정세와 12월 대선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선카드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체제유지 강화를 위한 경제정치적 실익을 챙기는 데 이번 회담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가 120여 일 남은 시점에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노 대통령이 임기가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추진한 것은 대선 구도 흔들기, 북핵 문제 해결 실마리 마련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을 통한 역사적 평가, 포용정책의 고착화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분석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대선판을 흔들 수 있는 호재로 판단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대선 구도는 한나라당 주도로 굳어진 지 오래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해체됐고 범여권 통합은 지지부진하다.
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대선 정국의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면 대선 구도에 새로운 지형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 변화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 노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면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피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현재 범여권 대선후보 선정 문제를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범여 대선주자들이 참여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하며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남북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있을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선주자들이 다시 노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판을 흔들어 재집권을 시도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도가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북 정상회담 발표에 대한 국민 반응이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차분한 것으로 보아 대선에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역사에 기록이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그동안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이 남북 정상회담의 선결과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는다 하더라도 북핵 문제나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쉽게 해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문제는 ‘민족끼리’ 해결하되 북핵 문제와 평화협정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 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또 포용정책이 차기정권에서도 계승되도록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못을 박아 두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아 포용정책을 유지해 온 것을 중요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노 대통령은 대북 유화정책이 차기 정권에서도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뀔 경우 대북정책이 전면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