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제
[논제1] 제시문 의 요지를 제시문 와 의 사례를 활용하여 설명하고(600자±50), 모든 제시문을 활용하여 역사를 이해할 때 필요한 시각은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1000자±50)
※ 제시문은 이지논술사이트에 있습니다.
■ 학생글
임문규·충주고등학교 3학년
제시문 (가)는 역사적 사실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①역사를 재창조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시문 (나)에서 소개되는 우리나라의 국사교과서는 과거 한중일 사이의 교류과정을 우리나라의 우월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서술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체면에 손상이 없게 하는 역사를 재창조하였다. ②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는 이러한 행위는 부각시키고 싶은 부분을 더욱 강조하기도 하며 은폐하고 싶은 부분은 왜곡하기도 한다.
제시문 (다)에서 나타난 대만 정부의 국사교과서 수정 행위는 대만의 독립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기존 교과서에 서술된 중국 중심적인 표현을 삭제하였는데 이는 역사가 재조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③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왜곡된 사실이 실체로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과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④우리는 일본에 주었을 뿐이고 중국에서는 자체적인 수용을 했을 뿐이다. 역사가 언어로 서술될 ⑤수 밖에 없는 맹점을 지닌 탓도 있지만 역사는 서술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주관적인 시각이 개입이 되어 버린 탓이기도 하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실체와는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앞서 밝힌 바, 서술로써 재탄생된 산물이다. 가령 임진왜란이란 역사적 사실도 한국, 일본, 중국에 의하여 서술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가 속한 집단에 따라서 서술된 역사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임진왜란을 조선이 끝내 저항한 결과 조선을 지켜내었다는 식으로 조선을 치켜세운 반면, 일본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변수가 없었다면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라고 ⑥진술하여 일본을 드높이고 있다.
즉, 역사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연루된 집단 혹은 존재가 5명이라면 5개의 다양한 서술로써 재탄생될 수 있으며 어떤 역사적 사실이 세계적이라서 인류가 연관되어 있다면 인종이나 민족 혹은 종교 등에 따라서 상반되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서술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⑦이렇게 서술은 다양하며 각각의 서술에 대한 가치판단 또한 어느 한쪽이 옳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시문 (마)에서 독일, 프랑스가 공통 교과서를 발간하였지만 교과서에 양국의 인식을 통합하여 수록하지 않고 각국의 인식을 그대로 병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⑧이러한 사실은 역사적 서술이 하나로 통합될 만큼 객관적일 수도 없으므로 역사를 대할 때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서술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그 사실에 대한 공통 부분, 말하자면 근본적인 실체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⑨제시문 (라)의 신채호 선생님은 ⑩조선상고사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가 식민사관으로 피폐되고 있는 현실에서 민족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우리의 역사를 살리려는 의지가 한껏 느껴지는 구절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역사는 나와 외부의 투쟁일 수는 없다. 이제는 배격하였던 비아를 되돌아볼 때라고 생각한다. ‘아’를 고집하는 일은 요즘 세계화의 추세에도 맞는 일이 아닐 것이다. ⑪중국이나 일본과의 역사적 마찰이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아’에 치우쳐서 발전이 없는 닫힌 자세로 존속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아와 비아’를 모두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가치중립성 신화는 무너질 운명”
입장을 분명히 하면 분석력에 날이 선다
■ 첨삭 지도
논제에서 ‘제시문을 활용해’라는 요구는 임문규 학생처럼 제시문의 요지를 ‘부분적으로’ 취사선택해 논증의 도우미로 써먹으란 말이다. 첫 번째 쓸거리를 보자. 우리 국사교과서의 한중일 문화교류서술은 ‘서술자의 호명에 따라 재구성’된 사례()이고, 최근 대만의 ‘역사독립’ 움직임도 서술자의 해석에 따라 당대의 요구에 복무하는 ‘현재사’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쓸거리에서도 제시문 와 의 사례를 논증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요긴하게 써먹었다. 논제 파악을 잘했고, 구체적 사례를 이론에 습합하는 응용논리력이 좋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쟁점을 잘못 잡았다. 이번 논제의 쟁점은 역사학의 아주 오래된 딜레마인 ‘(A) 사실(콩트’·실증과학주의) vs (B) 해석(콜링우드·주관적 해석주의), 어느 게 먼저인가’에 있지 않다. (A)와 (B)의 중재를 모색하며 역사는 ‘역사가와 그의 과거사실들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자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라던 (C) E H 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지식의 객관성·보편성을 믿었던 카를 넘어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호명해 (D)‘언어로의 전환(역사)’을 꾀했을 때 그것이 재현한 과거사실이 실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특정 과거사실을 실재’라고 지시 표현한 매개체가 ‘언어’이기에 바로 그 ‘역사서술의 매개체’인 ‘언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제시문 (포스트모더니즘 역사이론)의 요지다. 역사는 ‘과거사실(텍스트)의 해석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거다. 따라서 역사서는 “떠돌아다니는 기표(지시어)들의 행렬”(롤랑 바르트)이기 때문에 ‘과거사실(지시대상·기의)의 100%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거다.
하지만 임문규 학생은 쟁점을 ‘사실 대 해석’으로 잡고 ‘역사는 주관적 해석의 결과물((B))’뿐이라며 역사는 ‘투명한 거울(객관적·가치중립적 서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은 ⑧(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서술을 두루 살펴봄)이고 예시근거는 ⑪(아와 비아의 포옹)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를 이해할 때 필요한 시각’이란 결론이다.
물론 입장 (B)와 (D)는 역사의 객관성을 믿지 않는 공통점이 있지만, (B)는 ‘과거사실’에 (D)는 ‘과거사실의 기록’에 주목하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쟁점을 제시문 와, 에서 찾는 게 아니라, 논제가이드 글 격인 에서 찾아야 ‘의제설정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즉 역사서술의 주체는 없고, 서술된 텍스트(과거사실)들의 상호작용만 있다는 ‘언어로의 전환’(역사)의 존재가치를 물으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논점을 유도하는 게 깊이가 있다. 다시 말해 ⑧은 곧 (D)입장인데 역사학의 해체를 가져올 것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한 재반론을 해줘 논리의 치밀성을 갖추란 말이다. 그래야 미래지향적인 ⑪도 더 빛을 낸다.
배경지식이 논술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사전에 제시문 입장에 대한 공부를 했다면 분석논리력에 날이 더 섰을 게다. 언어의 우연성·불투명성 때문에 ‘과거사실’(facts)과 ‘과거사실의 기록’을 엄격히 구분하는 담론질서(역사)는 본질적으로 ‘권력게임’(제시문 )이기에, 역사의 가치중립성신화는 무너질 운명이었다란 식으로 말이다.
▷ ①은 “역사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란 표현이 한층 우리말투다. ②는 “이러한 행위는 과거사실을 입맛에 맞게 편집해 역사적 사실을 자의대로 재조명한다”로 고쳐야 선명하다. 문장 ③은 맥락상 역접접속사(하지만, 그런데)가 필요하다. 문장 ④는 “우리는 지난한 ‘한중일 문화교섭사’에서 때로는 주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받기도 하고, 비판적 수용을 하는 등 다양한 접촉을 했을 뿐이다”로 고쳐야 학생이 의도한 논지다. ⑤에서 ‘수’는 의존명사고, ‘밖에’는 조사다. 붙여 쓴다. ⑥은 ‘서술하여’가 맞다. ⑦은 “이렇게 역사서술은∼”으로 고쳐야 명징하다. 문장 ⑨에서 ‘신채호 선생님은 ∼하셨다’라고 존경어투를 구사했다. 하지만 독자가 ‘개인 신채호’보다 더 높고, 글은 객관적이다. “제시문 (라)의 신채호는 ∼이라고 했다”로 써야 한다. 고유명사(책명)인 ⑩은 ‘ ’,『』 등의 원고지 부호를 사용해 ‘특수(고유)’하게 표현해 주어야 한다.
■ 논제 분석
일반 언어논술 유형이다. 쓸거리는 두 개. (1) 제시문 와 를 활용해 의 요지를 설명하고 (2) 제시문 ∼까지 모든 제시문을 활용해 ‘역사를 이해할 때 필요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것이다. (1)의 경우 구체적 사례로 특정 역사이론을 분석해 그 이론의 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분석논리력, 의사전달 표현력, (2)는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에 대한 견해를 창의적으로 논술하라는 것이다.
■ 제시문 분석
실재했던 과거에 대한 인식이나 재현은 모두 ‘언어’를 매개로 해 실현된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의 ‘언어로의 전환’(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은 역사가 ‘담론(의미생산규칙)이자 언어적 재구성물’이란 걸 깨우쳐 주었다. 소위 역사적 사건의 호명(呼名)이 역사학의 중심 문제이고, 역사서술의 언어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거사실(지시대상)과 그 표상(지시어) 사이의 간극이 먼 탓이다. 언어의 지시적 불투명성은 역사학에도 있다.
문화는 상호교류가 기본성격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사는 중국에 대해서는 ‘자율적인 수용’, 일본에 대해서는 ‘시혜적’인 것으로 기술한다. 한마디로 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여 기술된 국사교과서의 ‘한민족 중심·우월주의’를 비판한다. 국사가 국민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과거의 역사를 ‘신화화’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이러한 비판에 대한 수긍이 가능하다.
중국과 대만의 ‘역사논쟁’이 한창이다. 서북공정, 동북공정, 대만공정 등 중국의 관변역사학의 노정은 역사학이 얼마나 국가권력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역으로 대만의 경우도 ‘근대국가’가 역사를 의도에 맞춰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것(대만 입장)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과거의 텍스트는 국가권력의 맥락에 따라 해석되고 이용되는 ‘상상의 텍스트’일 수 있다. 이른바 역사의 ‘언어로의 전환’은 역사가 실증, 가치중립성, 과학이란 독단을 비판한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사관은 저항 민족주의로써 보편적, 긍정적이었다. 치열한 독립운동과 역사연구를 병행한 신채호의 ‘아와 비아의 투쟁사관’은 당시 맥락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를 제 민족 간의 대결과 갈등, 승부와 패배로 파악하는 그의 ‘아와 비아의 투쟁역사관’은 ‘대립’만을 강조해, 상생적·보편적·미래지향적 가치를 갖기가 힘들다. 역사관도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시대적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승리 또는 지배의 경험을 가졌던 국가와 패배 또는 피지배를 경험했던 국가의 역사적 경험은 비대칭적이다. 따라서 역사해석의 장(場)은 그만큼 대립의 각이 첨예한 곳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승리/패배, 지배/피지배’라는 비대칭적인 역사적 경험을 수없이 공유했다. 그러나 이제 공동역사교과서의 편찬을 통해 역사와 역사인식의 ‘공유’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한중일 삼국에 타산지석이다. 특히, 세계화와 지역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서 동북아 삼국의 역지사지의 역사인식이야말로 공존과 평화구축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단, 일본군 위안부 부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일본의 무책임성이 큰 걸림돌이다.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구성원이 각자 분담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늘린 다음 각자가 혜택보는 선택이란…”
■ 다음 주 논제
제시문 와 , 와 를 각각 비교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에서 공공이익이 가장 커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600자 ±100)
가> 애덤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자애심이란 이 사회를 감사와 애정이 넘치는 쾌적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란 그러한 요소가 없어도 존속할 수 있다. … 스미스는 또한 인간을 본래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이기심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은 본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했다.
단지 그 행동이 지나치게 타인을 분개시키는 것이라면 설사 그것이 이기심에 근거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악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스미스는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을 동감(sympathy)이라는 인간의 감정 능력에서 찾았다. 이기적인 개인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적절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제3자의 시각에서도 적절하다고 판단되어야 할 것, 즉 동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에노 이타주 外 ‘세계를 지배한 경제학자 이야기’]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동시에 타인을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국가의 구속 아래 살아가고 자기 자신에게 제약과 통제를 가하는 것에 동의하게 되는 궁극적 원인이나 목적 및 동기는, 그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 결과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려는 인간 자신의 통찰력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위에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고 그들에게 처벌에 대한 공포감을 불어넣어 옭아매는 가시적 권력이 없을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열망에 의하여 빚어질 수밖에 없는 처참한 전쟁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 자신이 국가에 의한 구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만인으로 하여금 그들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양도하고 그들 모두의 의지를 다수결에 따라 그 사람이나 그 집단의 의지로 축소, 대체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인간이 한 사람이나 집단을 지명하여 자신의 모든 권리를 송두리째 양도하고, 만인의 공동 평화와 안전에 관련된 사안에서 그 사람이나 그 집단이 취하거나 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 바로 개개인 자신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만인이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전쟁 상태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결국 만인은 그들 자신을 그의 의지에 복종시키고 그의 판단에 맡기는 셈이다.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이슈네트워크나 정책공동체에서는 시민의 참여가 있더라도 공식적인 결정권을 장악한 사람이나 전문가들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강화시키려는 주장이 담론주의이다. 하버마스(Habermas)적 생각을 받아들이는 담론주의자들은 시민들의 정책결정자와 직접 협상할 뿐만 아니라 다른 관점을 지닌 시민들과 직접적으로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이 직접 타협하거나 공식적 결정권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적 정책결정에서는 분석적 합리성을 지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된다. 전문성이 약한 시민도 상호 충분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담론적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정길 ‘행정학의 새로운 이해’]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김 씨와 이 씨, 두 사람이 그 마을 주변에 홍수방지시설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홍수방지시설 비용은 각자 1000만 원이며 이를 통해 각자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은 1500만 원이라 하자. 만약 한 사람만 1000만 원을 부담해 불완전한 시설을 만들면 각자가 750만 원씩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고 둘 다 부담하지 않는다면 각자의 비용은 0이 되고 혜택도 0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자의 혜택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단 괄호 안의 숫자는 (김 씨의 혜택, 이 씨의 혜택)을 나타낸다.
[이준구, 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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