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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이번엔 ‘개헌폭탄’인가

입력 | 2007-01-18 19:33:00


정략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개헌이 안 됐을 경우 반대자들한테 끊임없이 책임을 묻겠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대통령에게 개헌은 성공하면 국정 ‘마무리’를 돌이킬 수 없게 해서 좋고, 안 돼도 ‘다음 정권까지 계속해서’ 책임을 따질 수 있어 나쁘지 않은 꽃놀이패다.

유신헌법서 부활된 대통령 발의권

청와대브리핑은 “우리 역사에 정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 있었다”며 “유신헌법을 제정한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인가” 반문했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이 바로 그 유신헌법에서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대통령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주권 원리대로 국민의 대표(대의)기관인 국회가 발의권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1962년과 69년 헌법은 국회와 국민에게만 발의권을 주었다. ‘헌법학 원론’(정종섭 저)은 “유신체제를 출범시킨 1972년 헌법에서 다시 대통령에게도 헌법 개정 발의권을 부여했다”며 “대통령을 우월적 지위에 있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고 했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며 과거 청산을 주장해 온 현 대통령이 ‘국정 안정’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개헌을 발의하겠다니 아이러니다.

설령 ‘원포인트 개헌’이 돼도 끝이 아님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면 앞으로 중요한 내용적 개헌을 계속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고 대통령은 밝혔다. 언제든지 개헌안 통과가 가능해지는 여대야소(與大野小) 국회가 구성된다면, 더 중요한 내용의 개헌이 도사린다는 의미로 읽힌다.

어떤 내용인지도 나와 있다.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했는데, 대통령 최측근 안희정 씨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따르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평화와 복지의 가치’다. 더구나 ‘북의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평화도 보장받을 수 없을’ 상황(이재정 통일부 장관)이다. 친절한 청와대브리핑도 영토와 통일조항의 갈등 해소, 토지 공개념 등 논의할 내용이 많지만 지금은 원포인트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소개했다.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3일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커밍아웃하기까지 이를 알아챈 사람이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다. 2002년 대선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앞으로 대통령의 구도대로 개헌이 진행된다면 친북좌파적 반(反)시장적 내용이 되리라는 건 뚜렷해졌다.

물론 한나라당의 반대가 계속되면 현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하기는 힘들다. 그럼 대통령은 개헌 반대자들을 ‘평화 반대세력’이라며 끊임없이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다. 2002년 대선 이틀 전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먼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해 전쟁 불사론자라고 규정했다’고 한겨레신문이 지적했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아니면 때를 맞춰서 북한이 그제 “남조선 대선은 평화냐, 전쟁이냐를 가름하는 대결장”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개헌론이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국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몇 년이고 평화와 반평화, “전쟁하자는 거냐, 아니냐”의 대결로 소용돌이칠 수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군복무 단축안 같은 ‘정책 복병(伏兵)’이 수시로 출현해 국민을 갈가리 찢어 놓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국민에게 이익인가.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 조짐

프리덤하우스는 그제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민주제도를 약화시켜 권위주의로 돌아가는 경향을 우려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첫 번째 수단이 언론 탄압이다. 그것도 합법적 테두리에서 경영 압박 등의 형태를 취한다고 했다. 법치의 후퇴도 빠지지 않는다. 세계화 중에서도 나쁜 세계화만 따라하는 게 신기하다.

헌법은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지, 대통령의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선거가 허용돼도 국민의 알 권리, 정부에 대한 비판의 자유라는 국민주권이 허용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좋게 말해 비자유적 민주주의, 달리 말해 독재일 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