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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0년 獨, 英세인트폴 성당 공습

입력 | 2006-10-09 02:59:00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성 바울)성당’은 영국인들에게 런던의 중심으로 불린다. 단지 이 도시의 심장부인 루드게이트 언덕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인트폴성당은 영국인에겐 건축물 이상의 가치와 상징성을 지녀 왔다.

지금의 위치에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604년. 바이킹족에 파괴되거나 화재로 불타 다시 짓기를 반복했다. 그 이전엔 로마의 디아나(달의 여신, 처녀성과 사냥의 수호신·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성당은 1666년 런던 대화재로 불탄 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이 1675년부터 35년간 공사한 끝에 1710년 완공했다. 바티칸의 산피에트로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지하 납골당엔 허레이쇼 넬슨 제독과 아서 웰즐리 웰링턴 공작을 비롯한 영국의 영웅들이 묻혀 있고 1981년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유서 깊은 세인트폴성당은 영국이 가진 ‘불굴의 정신’을 상징했다.

나치 독일은 1940년 여름 프랑스를 점령한 뒤 곧바로 영국과의 전면전쟁에 나서 ‘런던 대공습(the Blitz)’을 시작했다. 영국 상륙작전을 감행하기에 앞서 대대적인 폭격으로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매일 밤 평균 200대의 독일군 폭격기가 영국해협을 건너와 런던을 공습했다. 4만3000명이 사망했고 100만여 채의 건물이 파괴됐다. 하지만 영국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포연 속에 꿋꿋이 서 있는 세인트폴성당을 바라보며 전의를 다졌다.

그러나 폭격이 완전히 비껴간 것은 아니었다. 1940년 10월 9일 밤, 독일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 한 발이 세인트폴성당의 돔을 뚫고 들어왔다. 성당 중앙에 있던 제단이 박살났다. 그러나 더 큰 피해는 없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후 주변의 많은 역사적 건물이 산산조각 나는 와중에도 이 성당은 건재했다. 성당의 보호를 책임진 시민방위대는 성당 지붕에 불발탄이 떨어지자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제거하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세인트폴성당은 1944년 8월 연합군이 파리를 수복하자 축하의 종소리를 울렸다. 1945년 5월 마침내 유럽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는 3만5000여 명이 참석한 종전 기념 예배가 열렸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