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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김진호]美핵항모 신속배치 연평해전 확전 막아

입력 | 2006-09-25 02:59:00

1999년 6월 15일 연평해전때 한국군 경비정에 선제공격을 했던 북한 경비정(왼쪽)이 함포사격을 받고 침몰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와 관련해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한미 정상회담이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회담 내용을 설명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의 단독행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옛날에 미 2사단을 휴전선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우방의 군대를 인계철선으로 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필자는 1998∼1999년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합동참모본부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1998년 6월), 강화도 간첩선 침투사건(1998년 12월), 남해 반잠수정 침투사건(1998년 12월), 서해 연평해전(1999년 6월)을 지휘했다.

필자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한미 간에 긴밀하게 이뤄졌던 군사공조체제의 운영사례를 구체적으로 밝혀 주한미군의 역할, 한미연합사령부 체제의 전략적 기능,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1999년 6월 6일 새벽 해군 작전사령관은 “북한의 경비정이 조업어선 보호를 명분으로 서해 연평도 해역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0여 일에 걸친 남북한 대치상황은 15일 북한이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교전으로 이어졌다. 우리 군은 휴전 이후 첫 정규군 간의 전투에서 적을 크게 제압했다.

한국 합참이 육해공군 부대를 지휘해 대승을 거뒀지만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조했다. 즉, 연평도 해안 일대의 군사적 대치상황이 악화되자 양국은 군사위원회 상설회의(MC)를 개최했다. 한국은 미국 측에 안보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 전력의 조기배치, 실시간대의 정보 수집을 요청해 무력충돌 발생 시 미 증원 전력의 전개목록을 작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는 교전 전에 북한의 군사동향 정보를 실시간대로 제공했다. 교전 직후에는 한국 합참의장과 연합사령관의 긴급회의를 개최해 사전 합의대로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와 핵 항공모함 등을 한반도에 신속 배치했다.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란 의지와 관계없이 돌발적인 상황에 따라 발발할 수 있다. 연평해전 당시 북한은 서해안 일대에 유도탄 지상발사대를 설치했다. 해주에서는 전투기가 비상 대기하는 등 고도의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우리도 확전(擴戰)에 대비했는데 북한이 추가 공격을 시도했다면 국지도발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종결시키고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를 분쇄하는 전쟁억제력의 원동력이었다.

북한이 보유한 핵 및 화생무기, 미사일과 장사정포 등의 비대칭 전력은 한국군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화학무기 5000여 t을 보유하고 있고, 다양한 투발수단을 보유해 전 한반도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8일 서울 지하철 종각역에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돼 불안과 공포를 자아냈다. 북한군이 화학탄을 탑재한 미사일 1기를 서울 한복판에 투하시킨다면 구체적인 피해반경이나 살상인명 수에 상관없이 혼란과 피해가 훨씬 커진다. 전국 주요 지역을 동시에 타격할 경우 피해는 엄청나고 심리적 공황 등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의 국방목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 평화통일을 뒷받침한다’고 국방백서에 명시돼 있다. 주한미군의 전방배치와 한미연합사에 의한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 단순한 인계철선 역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미연합사의 한국방어계획(작계 5027)은 북한군 전면 남침 시 한국 방위를 위해 투입되는 미군 증원 전력(병력 69만 명)의 규모를 연합작전 계획 내 시차별 부대전개목록(TPFDD)에 명시하고 있다. 현재 체제에서도 전시 증원 전력이 100% 계획대로 전개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행사하면 증원 전력의 전개 규모 및 전개 가능성 여부는 더 불확실할 것이다.

연합사가 해체되면 연합작전계획이 소멸되며 증원 전력 목록 자체가 없어져 전쟁도발 억제 역량이 극도로 취약해진다. 또 연합방위체제와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 억제된 남침계획을 북한이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예를 들어 북한은 문산과 서울을 잇는 최단 경로로 기습공격을 감행해 서울을 포위하는 동시에 남한 지역 전체를 화학무기로 공격해 극심한 공황상태를 조성한 뒤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북한의 단기 속전속결 전략이 성공하는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국지적 충돌로 억제될 상황에서도 북한이 전면전을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은 애초부터 한국(군)의 자주와 상관이 없다.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려는 한국의 판단과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전략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일치해 상호 합의로 연합사 체제에 작전지휘권의 일부인 전시작전통제권을 위임했을 뿐이다. 이 작전권 또한 양국의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구성된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의 전략지시와 작전지침을 받아 행사한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문제는 시간을 기준으로 추진될 사안이 아니다. 안보상황과 우리의 전투수행능력 등 상황적 여건을 기준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핵 및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 군사적 위협이 가중되는 시점에서는 거론될 사안이 아니다. 우리의 독자적인 군사력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고 전략전술 정보를 독자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때, 남북한 간에 상당 수준의 군사적 신뢰가 구축됐을 때 논의가 가능한 문제이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시기를 2009년으로 확정하고 조기 이양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동맹 국가이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 단독행사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과도 배치됨을 인식해 한국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기 바란다.

김진호 전 합참의장

■김진호 전 합참의장

1964년 고려대 졸업, 소위 임관(ROTC 2기)

1968년 베트남전 참전

1991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장

1993년 11군단장, 1996년 제2군사령관

1998∼1999년 제28대 합동참모본부 의장 겸 통합방위본부 본부장

2001년 미국 하와이대 객원연구원

2001∼2004년 한국토지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