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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맞습니까…노부모 한겨울 냉방에 방치 숨지게 해

입력 | 2006-08-21 03:00:00


아버지에게서 사업체를 물려받은 중소기업 대표이사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영하의 날씨에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 일주일간 방치해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0일 영하 10도였던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집으로 부모가 찾아오자 보일러를 끄고 전화 코드마저 뽑은 채 집을 비워 아버지 박모(80) 씨를 숨지게 한 혐의(존속유기치사)로 D흑판 대표이사 박모(47) 씨를 구속했다.

▽창문 열고 보일러 꺼버려=경찰 조사 결과 구속된 박 씨는 평소 부모를 모시던 둘째 형(50)이 지난해 말 실직한 뒤 “직장을 잡을 때까지 잠시 부탁한다”며 자신의 집에 부모를 모셔오자 가스와 난방장치를 끄고 전화 코드도 뽑은 뒤 강원 횡성군으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현관문은 자동 잠김이 돼 있었다.

박 씨는 당시 부모에게 “왜 우리 집에 찾아왔느냐, 밥 얻어먹으러 왔느냐”고 소리쳤고 집에 냄새가 난다면서 창문도 열어젖힌 것으로 알려졌다.

방치된 박 씨의 부모가 발견된 것은 6일 후. 노부부를 처음 발견한 빌라 경비원은 “추위 때문에 박 씨 집 보일러가 터져 물이 아래층으로 흘렀다”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신한 부부가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박 씨의 부모는 추위에 떨며 음식물을 전혀 먹지 못해 아버지 박 씨는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으며, 어머니 강모(78) 씨는 겨우 기어 다닐 정도였다고 목격자들은 진술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이때 입은 동상과 패혈증 등이 원인이 돼 3월에 숨졌고, 어머니는 후유증으로 7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유는 재산문제=박 씨가 부모를 학대한 이유는 재산문제로 인한 형제간의 오랜 갈등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슬하에 아들 4명, 딸 1명을 둔 아버지 박 씨는 1989년 자신이 창업해 운영해 오던 D흑판 지분의 50%를 둘째 아들에게 주고 경영권을 넘겼다. 대학을 나온 다른 세 아들과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의 일을 도우며 함께 살아온 둘째 아들을 선택한 것.

그러자 나머지 아들 3명이 “왜 둘째만 편애하느냐”며 불만을 표시해 이들과 둘째 아들 간에 잦은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둘째 아들은 큰아들에게 대표이사 직을 넘기고 부사장직을 맡았지만 형제들은 1993년 둘째 아들을 생산직으로 밀어냈다가 해고했다. 이후 대표이사직은 셋째 아들에게로 넘어갔다.

이후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부모를 모시던 둘째 아들은 지난해 12월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바로 아래 동생인 셋째 아들 집에 잠시 모셔 두려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부모를 냉방에 방치했던 셋째 아들 박 씨는 3월 말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부모를 치료하던 의사가 전화하자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끊는 등 모른 체하다 누나(53)의 고소와 7월 초부터 사건 경위에 대해 말문을 연 어머니의 증언으로 경찰에 입건됐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면서도 “부모와 부딪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집을 떠났을 뿐 보일러를 끄거나 전화 코드를 뽑지는 않았다”며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