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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섬에 갇힌 사람들…돈 뺏기고 매 맞으며 노예생활

입력 | 2006-07-05 03:09:00


정신지체장애 2급인 박상권(가명) 씨는 12년 전 전남 신안군으로 들어왔다. 마을회관에 살며 하루 12시간 넘게 농사를 짓는 등 마을 일을 했다.

그는 이장집 일을 도왔지만 임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를 위한 지원금 30여만 원이 들어오는 통장과 도장은 이장이 관리하면서 횡령했다.

신고를 받고 실태조사를 했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희선 간사는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마을회관에서 지내다 도망가다가 붙잡혀 이장에게 맞고 사흘간 누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신안군 수산업체에서 10년 이상 일한 김상혁(가명) 씨 등 정신지체장애인 2명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폭력에 시달렸다.

이들은 주위의 제보로 목포의료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가족들은 “데리고 있을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다시 업체로 돌려보냈다.

박 씨나 김 씨 같은 정신지체장애인은 지능지수(IQ)가 70 이하. 정도에 따라 경도 중등도 극심도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등록된 정신지체장애인은 2005년 현재 12만5563명에 이른다. 월평균 소득은 전체 장애인 중 두 번째로 낮은 47만5000원.

전남 목포경찰서는 5월 기초생활수급자 실태를 조사하다 신안군 임자섬에 사는 김상호(가명·39) 씨 명의의 통장에서 다른 사람의 전기료와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것을 알았다.

수사 결과 박영민(가명·50) 씨가 10여 년에 걸쳐 정신지체장애인인 김 씨의 장애수당과 지원금 2800여만 원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800여만 원은 박 씨가 보험료와 전기료로 사용했다.

박 씨는 “김 씨를 돌봐준 대가에 불과하며 강제노동을 시킨 것도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의 보호시설에서 견디다 못해 나온 김 씨를 보호했다는 박 씨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 경찰은 처벌 여부를 고민 중이다.

박 씨는 경찰조사를 받은 뒤 김 씨에게 빨리 집을 나가라고 얘기했다. 데리고 있어 준 은혜를 모르고 자신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김 씨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정신지체장애인이 방치되는 데는 지역 사회복지사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복지사는 김 씨가 노동과 수당을 착취 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임자면사무소의 사회복지사 이모 씨는 “1년에 한 번씩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집에 갔을 때마다 김 씨가 없어 잘 지내고 있다는 주위 사람의 말만을 믿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280여 가구의 수급대상자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안=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어떻게 도와야 하나…‘그룹홈’ 통한 사회적응훈련 효과▼

서울 시내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며 매달 70여만 원을 버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 남현미(가명·28·여) 씨는 4세 때 자신을 입양한 의붓아버지 김모(55) 씨에게서 12세 때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

의붓어머니도 폭행을 일삼아 가위로 귓불을 자르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때리기도 했다.

남 씨는 2001년 이웃이 경찰에 신고해 지옥 같은 집을 벗어났지만 대인기피증세를 보이며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2003년 12월 한 장애인센터에서 운영하는 세차팀에 합류한 뒤에야 남 씨는 또래 장애인들과 어울리며 활기를 찾았고 부지런한 성격 덕분에 금세 직장에 적응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4년간 생활했던 쉼터를 떠나 다른 정신지체장애인 3명, 지도교사 1명과 함께 그룹홈(장애인 공동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남 씨는 정신지체장애인이 재활에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신지체장애인은 노동 착취나 성적 학대를 받아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그룹홈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룹홈은 복지시설에 수용돼 있던 장애인 4, 5명이 재활교육사의 최소한의 도움을 받아 일반주택에서 생활하며 사회에 적응해 가는 공동가정이다. 노동과 보상을 통해 사회적응 훈련을 병행할 수 있고 수용 기간에 제한도 없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룹홈은 전국적으로 330여 개에 불과하고, 여기에서 생활하는 정신지체장애인은 16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